결혼을 앞둔 여자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과 설렘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핑크빛일 테고 파스텔 톤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상견례와 결혼 날짜까지 한 큐에 끝내버리고 요즘은 친정엄마와 혼수를 보러 다니고 피부숍을 다니며 생애 한번 있을 아름다운 날을 위해 온 신경을 쏟았다.
서른둘의 나이. 요즘으로 치면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라지만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훈수 덕에 그녀의 머릿속은 적잖이 복잡해졌다. A는 근사한 카페를 통째로 빌려 피아노를 치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프러포즈를 받았다더라. 친구 B는 청담동으로 시집간다더니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몇 세트를 받았다더라 하는 말들이 자연스레 들렸고 친구들은 며칠 굶주린 하이에나들처럼 여자의 결혼에 관심을 기울였다.
여자는 신경 쓰지 않고 남자친구에게 내색하지 않기로 마음먹고도 내심 신경이 쓰였고 기대가 되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그럴 거라며 자신은 속물이 아니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남자친구에게 대뜸 나 어디서 어떻게 프러포즈해줄 거냐.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줄 거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무엇보다 남자친구의 형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여자의 얼굴엔 점점 그늘이 드리웠다.
오늘 예쁘게 입고와. 일 끝날 때 맞춰서 데리러 갈게.
남자친구의 문자다. 여자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예쁘게 입고오라니, 왜? 혹시 프러포즈하려고 그러나? 그렇담 뭘 입어야 하지? 야외에서 하면 좀 쌀쌀할 텐데 겉옷을 준비해갈까? 눈물을 흘려야 하나? 여자는 30초간의 짧은 순간에 몇 가지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귀여운 것. 조금 무뚝뚝하긴 했어도 예쁘게 입고 오라는 힌트까지 주다니. 여자는 한껏 들뜬 마음을 즐겼다. 언제 또 이렇게 행복하겠느냐며 이 순간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여자는 자신이 아끼던 옷을 꺼내 입고 싱글벙글 하며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는 칼같이 여자를 데리러 왔다.
“어디 가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건데? 응? 왜 예쁘게 입고 오라고 했어? 어?”
여자는 남자의 차에 타자마자 콧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질문을 쏟아 부었다. 남자는 가보면 안다며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았고 여자의 기대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그런데.
남자는 카페를 빌리지도 근사한 곳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았고 무릎을 꿇으면서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심히 스윽 건네는 반지케이스 하나.
이게 뭐야. 여자는 기쁨과 감동의 눈물을 준비해왔으나 서러움으로 흘릴 줄은 몰랐다. 여자는 기쁨도 감동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반지케이스만 바라보았다.
“실망했어?”
그걸 말이라고. 여자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내뱉지 않았다.
“어떤 반지인지 궁금하지 않아?” 라고 말하며 반지케이스를 열었다.
붉은빛이 선명한 반지다. 루비인가. 동시에 남자가 말한다.
“루비 아니야. 빨간색을 띄는 희귀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내가 하늘에 떠있는 별을 따다 달래 달을 따다 달래. 그냥 말 한마디 아니 말 한마디가 어려우면 꽃이라도 아니 꽃도 어려우면 노래라도. 그만하자.”
“알아. 네 마음. 섭섭하겠지 속상하겠지. 그런데 반지 꽤 의미 있는 거야. 이게 1월 탄생석으로 만든 거거든. 당신 생일이자 우리 결혼기념일이 될 1월.”
여자는 애써 침착하게 반지를 바라보았다.
“다음번 결혼기념일에는 근사한 카페도 빌리고 백송이 꽃도 준비하고 피아노도 배워서 노래도 불러줄게. 더 예쁜 반지와 함께.”
좀 전에 남자가 내민 보석은 가넷이었다.
흰 눈발이 내리는 겨울이면 어김없이 군고구마 장수와 붕어빵 장수가 눈에 띤다. 집 앞 작은 골목 앞에 있는 따끈한 붕어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골목에 고소한 붕어빵 냄새가 나면 출출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흰 봉지에 군고구마와 붕어빵을 가득 담아가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붕어빵 천 원어치에 몇 갭니까?"하고 물으면 "세 개 인데 네 개 드릴게요."하며 따뜻한 마음까지 덤으로 주시곤 했다.
아버지는 유난히 이곳 붕어빵을 좋아하셨다. 내가 간혹 빈손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거기 붕어빵 장수 오늘은 쉬나? 하며 내심 붕어빵장수의 안부까지 물으시곤 하셨다. 아버지 덕분에 붕어빵 포장마차의 단골이 된 나는 가끔 붕어빵 장수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붕어빵 장수는 한쪽 눈이 불편한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어빵을 휙휙 돌릴 때면 그 노련함에 박수를 칠 뻔한 적도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버지를 위한 붕어빵을 사가려고 포장마차에 들렀다.
“또 오셨네요.”
“네. 오늘은 날씨가 더 추워진 것 같아요. 오래 서계시면 감기 드시겠어요.”
“저는 불 앞에 있는데요 뭐. 추운 줄도 몰라요. 오늘도 아버지 붕어빵 사드리려고 오셨나봐요?”
“저야 그렇지요 뭐,”
“허허. 그런데 아버님은 붕어빵 질리지도 않으신대요?”
“질리긴요. 언제는 깜빡하고 빈손으로 가면 섭섭해 하신다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요기 포장마차 열었나 안 열었나부터 확인한다니까요.”
“아무튼, 매번 참 고마워요. 단골이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추우실텐데 이거라도 하나 드시고 계세요.”
“아저씨는 몸도 불편하시고 추우실텐데 어쩜 매년 겨울이면 하루도 안 빼먹고 이렇게 나오세요?”
“춥지요. 추운데 이렇게라도 안하면 집에 혼자 계시는 노인네가 더 추울 것 같아 이렇게 몇 푼이라도 벌어 가는 거지요. 그래야 집에 불도 피우고 생선 한 마리라도 사가지요. 이런 말도 부끄럽지만.”
“부끄럽긴요. 우리 동네 효자가 여기 계셨네.”
“효자라니 당치도 않아요. 그저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이지요.”
그렇게 말을 하는 아저씨의 장갑은 많이 낡아있었다. 목장갑은 붕어빵을 돌리는 꼬챙이 때문에 닳아 구멍이 나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 보세요.”
“네, 안 그래도 오늘 아버지 생신이라 일찍 들어가려고 했어요. 남은 붕어빵은 아버님께 드리는 제 선물이에요. 단골분께 드리는 제 선물이요,”
아저씨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흰 봉투 가득 붕어빵을 담아주셨다. 아저씨의 한쪽 눈은 찡그러져 있었지만 어느 때보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손수레를 끌고 오르막을 올라갔다.
혼자 계실 아버지를 위해 여느 때보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오르고 또 올라갔다.
양손 가득 붕어빵을 들고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신다.
“무슨 붕어빵을 이리 많이 사왔노? 붕어빵 털어 왔나?”
“네. 붕어빵 장수가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이래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니까요.”
“그래? 고맙네. 고마워.”
아버지는 달고 따뜻한 붕어빵을 머리부터 덥석 드셨다. 품에 품고 와서 그런지 붕어빵에서는 아직도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유리씨, 괜찮겠어? 오를 수 있겠냐고.”
걱정인지 귀찮음인지 모호한 어조로 말하는 팀장의 목소리에 괜히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럼요. 피해 안 가도록 천천히 뒤따라갈게요.”
팀장은 대답을 다 듣긴 한 것인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찬바람을 남기고 다른 팀원에게로 가버렸다. 가까스로 참고 있는 눈물에 손과 발이 미세하게 떨렸다. 팀장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져 남은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삶처럼 짐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
유리는 선천적으로 하반신 근육과 뼈가 약해 약한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곤 했다. 그래서 다섯 살 때부터 그녀의 엄마는 언제나 괜찮겠어? 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래서 그녀는 남들 한 번씩은 다 타본 자전거도 타본 기억이 없고 그 나이 때 여자아이라면 누구나 다 해본 고무줄놀이 한번 못해봤다. 사실 해볼 생각도 못 해봤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인 운동회 날의 기억을 묻는다면 사실 나는 즐거웠지만 엄마는 오히려 엄마가 학교에 말해 줄 테니 학교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다.
그런 재미없는 학창시절을 보낸 뒤 직장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그녀다. 어릴 적부터 늘 고민이면서 꿈이었던 문제가 드디어 터진 것이다.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갖는 첫 워크숍을 치악산으로 온 것이다. ‘악’이 들어가는 산은 바위로 이루어져 산세가 험하여 건장한 남자들도 힘들다고 한 것쯤은 유리도 안다. 그래서 엄마는 물론 팀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우기고 우겨 따라가겠다고 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마음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을 되뇌어 왔지만 사실 그녀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따라오면서 그녀가 생각한 것이 있고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워크숍을 따라 오기로 작정한 후 줄곧 생각한 것이 있다. 바로 코끼리와 말뚝 이야기이다.
서커스에서는 작은 코끼리를 어렸을 때부터 말뚝에 메어둔다.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아기 코끼리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게 자란 코끼리는 나뭇가지만 한 말뚝을 충분히 뽑아내고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코끼리는 어렸을 때부터 불가능 할 것이라고 되뇌어왔기 때문이다.
다시금 팀장이 내게로 왔다.
“유리씨. 유리씨가 간다고 하니까 말리지는 않을게. 근데 유리씨도 참 유별나다. 남들은 오르기도 전부터 힘들다고 저렇게 울상인데 굳이 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뭐야?”
“말뚝에서 좀 벗어나 보려고요.”
유리는 발가락을 잠시 꼼지락거려본다.
‘나도 그렇지 않을까. 나도 어쩌면 자전거도 타고 고무줄놀이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어 놓은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드디어 한 걸음 발을 떼어본다. 어쩐지 발이 가볍다.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야지. 그동안 당신 힘들었던 거 알아. 누구보다도.”
이제는 원망이나 설득을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원망이나 설득의 마음이 없다고 해도 그래도 남편이 마음을 돌려주기를 내심 바라는 마음은 있다. 홧김에 한 말이었다고 그냥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고 말해주길.
“연락 자주 할게. 아이들 데리고 자주 내려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남편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화를 내고 시부모님께 일러보기도 하고 협박까지 했던 아내였기에 남편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남편은 안정된 직장에서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가정에서는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아이들이라면 끔찍이 아끼던 최고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남편의 선택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든 아내였다. 생활비 한 번 허투루 쓴 적 없는 모범답안과 같던 남편이 돌연 귀농 생활을 통보한다. 처음에는 권유였으나 나중에는 혼자라도 가겠다고 통보를 한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묵묵히 함께 살아온 30년. 아이들을 다 키워놨다고 생각해서일까. 일주일간 아내는 잠도 제대로 못 들고 남편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했다. 도저히 모르겠다. 무슨 영문인지.
생각에 변함없음을 알리는 남편의 대답에 이젠 이런 실랑이도 소용이 없음을 받아들였다.
결국, 남편은 홀로 횡성으로 떠났다. 예전의 남편이라면 아내가 싫다고 할 때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고집불통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든다. 무작정 우겨 내려온 것이지만 단출한 살림에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귀농 생활이었다. 일단 무작정 장에 가보기로 한 남자는 우연히 소 한 마리를 얻어 기르게 되었다.
큰 눈을 껌벅이는 소를 바라보니 어릴 적 남편과 닮았다. 남편은 큰 눈에 겁이 많아 소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소와 남편은 닮은 점이 많았다. 큰 눈을 껌벅이며 남편을 바라보는 것이 이 녀석과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논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고 특별히 밭을 갈 일도 없는 남자였지만 남편은 소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내가 바라보았다면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귀농 생활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을 즈음 아내가 왔다. 아내는 오자마자 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마당에 자리 잡고 있는 소를 바라본다. 이젠 소까지 키우느냐며 농사꾼이 다 됐다고 웃는다. 아내가 오랜만에 웃는다.
아내도 자신이 빙긋 웃는 것이 어색했는지 슬쩍 말을 돌린다.
“혼자 피죽도 못 얻어먹고 사나 했더니 제법 살림꾼 다되었나 보네. 딸린 식구도 있고. 하긴, 횡성 하면 한우지. 이 소는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아내는 겁이 많고 큰 눈을 껌벅이는 소를 향해 잡아먹으려고 기르는 거냐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소여물을 다듬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소를 끔찍이 생각하던 횡성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소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로 접어들자 횡성사람들은 소를 식용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여전히 소는 가족과 같은 존재이다.
아내가 돌아갔다. 아내는 은밀히 여기 내려와서 같이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물론 함께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남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큰 눈을 껌벅이는 소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옛날에 한 선비가 살았습니다. 이 선비의 머릿속에는 온통 과거시험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사실 이 선비는 과거시험만 벌써 일곱 번째 떨어지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여덟 번째 과거길에 오르는 것입니다. 선비의 꿈은 장원급제를 하여 어여쁜 색시를 얻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낙방을 하고 말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께 절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 문경쯤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목도 축이려고 주변을 살피었지요. 때마침 한 주막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갔지요. 그런데 매번 한양으로 갈 때 이 길을 지났는데 그 동안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주막이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으나 몸이 피곤하여 급히 따끈한 국밥 한 그릇과 탁주 한 사발을 시켰습니다. 며칠 동안 걷느라 지친 몸에 국밥 한 숟갈 들어가니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배가 부르고 몸을 추스르니 보니 이 주막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주모를 불러 이 주막을 불러 물어보려고 하였지요.
"이보시오, 주모. 내 이 길을 벌써 여덟 번째 지나는 것인데. 이 길을 지나면서 단 한 번도 이 주막을 본적이 없다네. 이 주막은 언제 생긴 것이오?”
“아이고, 이 주막이 언제 생긴 것이 무에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이번에는 장원급제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 주막을 들른 사람 중에 과거시험에 떨어진 사람이 없다는 소문은 들으셨답니까?”
“그것이 사실이오? 아니면 나에게 농을 하는 것이오?”
“어찌 감히 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선비님께만 알려드리는 비밀이니 이번 시험에는 꼭 장원급제 하십시오.”
그렇게 선비는 주모가 알려준 대로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주모는 이 주막을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나무에 앉아있는 노란머리의 새가 이끄는 길로 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장원급제를 할 수 있다고 하였지요. 그렇게 선비는 의심 반 믿음 반의 마음으로 큰 나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큰 나뭇가지 위에 노란머리의 새가 앉아있는 것이었지요. 선비가 놀라 크게 소리를 내자 노란머리새는 날아오르더니 천천히 낮게 날아 마치 길을 안내하는 것 같았습니다. 선비는 신비로운 마음에 노란 새가 이끄는 곳을 따라 갔지요. 그런데 이 길은 선비가 매번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선비는 의심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주모를 믿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길로 가는 길은 경사가 높고 길이 험준하였습니다. 이렇게 흙을 밟으며 험한 길을 오르던 선비는 그동안 보지 못한 자연경관은 물론이고 천한 상민들의 고달픈 삶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특별한 비책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그 주모의 취기어린 한 마디에 우연으로 만난 새를 따라 온 것쯤이라고 생각하였지요.
그렇게 한양에 다다른 선비는 마음을 다잡고 시험지를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시험의 문제가 새를 따라 걸어온 길에서 보고 들은 상민들의 삶에 대한 것을 서술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선비라면 마땅히 이 나라 백성들의 성품과 삶을 두루 알고 있어야 한다는 주제였습니다. 선비는 당황하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고 당당하게 생각을 써내려갔지요. 시험을 마친 그는 곧 장원급제를 하였고 고맙고 신기한 마음에 당장 그 주막을 찾아 고마움을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똑같은 자리에 그 주막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큰 돌 하나만이 놓여있었지요. 이 신기한 이야기가 입에 입을 타고 소문이 나 과거를 준비하던 선비들은 모두 새도 쉬어간다는 이 길을 통하여 과거시험을 보러갔고, 이 길을 통해 시험을 보던 선비들은 줄줄이 시험에 합격하였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해운대에 내려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날이 갈수록 날짜 세는 데에 무심해지고 있으니, 오늘 날짜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부정적인 일이 아니다. 내가 쓰는 시간을, 내게 남겨진 시간을 세는 것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꽤 인지도가 있다. 추억을 남기려 내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는 꼭 배경으로 노을 진 바다를 함께 그려준다. 그것도 붉은 빛이 아니라 노란 빛깔로 노을 져 가는 바다를 말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한 서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여기에는 나만 알고 있는 사연이 있다.
무작정 그림을 그리겠다고 해운대로 내려왔다. 집안의 반대가 심하여, 어렵게 들어간 미술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하고 경영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떠나던 날,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꼭 안아주셨다.
“넌 어디 가서든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를 더 붙잡지 못하고 이 말만을 전하실 때의 그 심정이 어떠했는지, 나는 아직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꼭 성공하겠다는 막연한 한 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집을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부산 쪽에 살고 있는 친구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캐리커처를 그려 주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고작 몇 시간 뒤에 해운대에 닿을 수 있었으나, 해변에서 캐리커처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내게 쉬이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무턱대고 사람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아쿠아리움 앞에 앉아 자리를 폈다가 싸움이 붙을 뻔한 적도 있었다.
어느 흐린 날, 백사장 끝까지 밀려난 나는 그 날의 장사를 포기하고 해변을 따라 걸었다. 집을 떠나면 어머니의 된장찌개가 제일 먼저 그리워진다더니,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지금쯤 뭘 하고 계실까. 분명 비어있는 내 방에 들어가 내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시고 계실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꽤 멀리까지 와 버렸다. 친구들과 몇 번 놀러 온 적이 있어 해운대 번화가의 지리는 꽤 잘 아는 편이었지만, 해수욕장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작은 목조계단이 보이고, 어느 새 동백섬 입구를 마주하게 된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동백섬으로 들어갔다.
앞길이 깜깜할 때 바다를 보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망망대해 앞에 서 있으면 내 자신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절로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순수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사람이 이만 원을 받고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기분만 우울해지는 것을 괜히 올라왔다고 생각하며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 때, 내 앞에 인어공주가 나타났다.
바위 위에 올라앉은 그녀는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대신, 한 손을 가슴에 얹은 채 발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손에는 구슬이 하나 들려 있고, 옷자락 아래로는 물고기의 꼬리가 숨겨져 있다. 무슨 연유인가 하니, 이 공주의 외할머니의 나라는 바다 아래의 수정국이며, 어머니의 나라는 바다 건너 나란다국이라 하였다. 공주가 이 동백섬에 시집을 와서 왕비로 살다가 두 나라를 몹시 그리워 하니, 그녀가 가진 황옥에 달 밝은 밤이면 두 나라가 비쳤다고 한다.
나는 청동상으로 만들어진 이 인어공주의 모습에서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때마침 해가 저물기 시작했는데, 흐린 날의 일몰은 새빨간 홍옥이 아닌 노오란 황옥 빛깔이었고, 그 공주의 이름도 모국의 이름을 따서 황옥이라 하였다. 황옥 공주의 쓸쓸한 등 위로 노랗게 타는 노을빛이 내리니, 나는 그때야 이 바다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운대 앞바다가 아닌, 고향을 그리워하는 황옥 공주가 앉아 있는 동백섬 앞바다를 말이다.
집을 떠난 지 한 달. 나는 그날에서야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지만, 쉽게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화가로서 당당하게 내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나는 그림마다 노랗게 타는 노을을 그려 넣었다. 찌푸리고 있던 인상을 펴자 다른 그림쟁이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하루하루, 느리지만 차근차근 내 자리를 잡아 지금에 이르렀다.
인적이 드물어지는 시간이면, 가끔 황옥 공주 옆에 가 앉아 함께 황옥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황옥에는 가끔 우리 집이 비치곤 한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그녀에게, 이제는 내가 되려 위로를 건넨다. 돌아갈 곳이, 그리워 할 곳이 있기에 바다가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이게 얼마만이야? 가을빛을 닮았다기엔 너무 화려한 차림의 여자가 말했다. 십 년 만인가. 단풍은 여전하네. 곱다 고와.
내장산에 단풍을 보러 온 인파는 엄청났다. 색색들이 색동옷을 갈아입은 단풍과 노랑, 빨강, 분홍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제법 어울렸다. 내장산의 단풍은 철이 되면 으레 빨강, 노랑으로 물이 들었고 그렇게 매년 물이 드는 단풍을 사람들은 매번 놀라워하고 감동스러워했다.
“단풍 처음 봐? 뭘 그렇게 입을 헤 벌리고 봐?”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다, 왜! 알록달록 예쁜 게 꼭 내 20대 때를 보는 것 같아서”
“이 기지배 공주병 또 도졌나보다.”
그녀는 젊었을 때 한 미모 했다는 말을 자주했다. 실제로 그녀는 나이보다 젊어보였고 지금도 예전처럼 아름다웠다. 20대의 그녀는 단풍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 바닥에 닿기 전에 손으로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단풍나무 아래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적도 있다. 그렇게 떨어지는 단풍나무를 하나 주워 어여쁜 글씨를 썼다. 그리고는 책속에 고이 넣어 보관을 했다.
빨갛던 단풍이 진한 갈색빛이 돌 때 쯤엔 코팅도 해서 보관하던 감성적인 그녀였다.
“조금만 천천히 걷자. 응?”
여자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여전히 친구들은 조잘거리며 그녀를 앞질러갔다. 거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 친구들의 모습이 사라져갔다. 여자는 여전히 조금만 천천히 걷자고 말했지만 친구들이 그 말을 들었을 리 없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잖아. 바람이 조금만 불어주면 좋겠는데.’
그녀는 단풍나무 아래에 서서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 옛날 책 속에 꽂고 다니던 단풍나무를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단풍은 여전했다.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은 알록달록한 색채를 풍겼다.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고 단풍만큼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산을 찾았다.
산을 오르기 위함인지 단풍을 보기 위함인지 몰랐지만 사람들은 즐거워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떨어지는 낙엽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바람이 한 차례 더 불었고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헬기가 높이 떠올라 있었고 사람들은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댔다.
9시뉴스에서 단풍을 찍는 듯했다. 아니 단풍을 보러 온 사람들을 찍는 것일 수도 있다. 여자도 찍혔을까? 아니면 먼저 올라간 친구들의 모습이 담겼을 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떨어지는 단풍을 코앞에서 잡아챘다. 구겨지지 않게 잘 보관할 수 있을까. 단풍에 그녀는 이렇게 적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오후, 단풍이 내게로 왔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단풍이다. 여전히 고운 빛을 띠고 있다. 내년이면 어떤 빛을 낼까.
바람이 불면 알록달록한 잎이 떨어진다. 잎이 떨어지면 갈색빛으로 늙을 것이다. 노랗고 빨갛던 단풍도 갈색으로 색을 잃으며 늙을 것이다. 그녀처럼.
오랜만이네, 새댁!
반가운 말투로 인사를 하는 아주머니 말투에 아무런 반박도 없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실제로 오랜만에 들른 것도 아니었고 새댁 꼬리표를 달만큼 풋풋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시장으로 직접 올 때에는 시어머니의 부름을 받을 때이다. 결혼 준비 즈음 친구들은 시댁과의 거리는 최대한 먼 곳이 좋다고 했다. 없으면 더 좋고. 남자들이 생각하면 식겁할 이야기이지만 오죽하면 ‘시월드’라는 말이 나올까 한다. 거기에 시누이는 덤이다.
우리 어머님은 마산어시장에서 전어를 파신다. 우스갯소리로 너는 전어 때문에 절대로 집 나갈 일은 없겠다고 했지만 왜 없을까. 고부관계에서 기권을 들어버린 남편과 시누이가 무슨 벼슬인 줄 아는 시누이까지.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무작정 싫은 것은 아니었다.
새아가를 시장으로 불렀다. 며늘애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또 시장으로 부른다며 투덜거리는 음성이 귓가에 맴맴 돈다. 친구들이 왜 며느리 눈칫밥 먹으며 사냐고 당당히 살라고 하지만 요새 어디 그런가 싶다. 비린내 나는 손으로 손주 새끼들 얼굴도 못 만지게 하는 며느리 때문에 손주들을 미술관 전시품마냥 ‘좋아라’ 보기만 해야 할 때도 있다. 며느리와의 사이가 소원해진 건 시장을 맡아서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부터였다.
요즘 누가 시장에서 장사하는 걸 환영하겠느냐마는 그렇게 남처럼 퉁명스럽게 피할 줄은 몰랐다. 하기야 요새는 집 비밀번호 물어보면 왜 빈집에 들어가려고 하는지 그냥 자기네들 있을 때 오라고 하라고들 한다더라.
“어머니, 저 왔어요. 그동안 별 일 없으셨죠?”
그동안 이라는 단어에서 어색함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남의 집에 오는 사람처럼 꼭 무엇을 들고 온다.
“뭘 이런걸 사와. 그냥 오지.”
“그래도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시장. 그만 두기로 했다고. 그 말 하려고 불렀다. 비린내도 지겹고 힘에 부치기도 하고. 그리고 너한테 이어받으라는 그런 말도 안하마. 그냥 팔기로 했어.”
“어머니.”
“아무 말 마라. 그렇게 하기로 했어. 아범도 그렇게 알고 있을 거고. 삼 대째 이어왔으면 그걸로 됐지. 언제까지 이어하겠니.”
시어머니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혔으나 그것은 원망도 미움도 아닌 굳은 결심으로 인한 후련함 때문이었다. 진작 이렇게 결정했다면 며느리와도 소원해지지 않았을 테고 마음도 한결 편안했을 것이다.
“어머니, 죄송해요. 그래도요 어머니, 시장 오기 싫다고 하면서도, 비린내 맡기도 싫다고 하면서도요 어머니, 우리 환이 가졌을 때요. 어머님이 구워주셨던 전어가 그렇게 생각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 한마디를 못하고…. 그런데 어머님 어떻게 알고 전어 보내주셨잖아요. 그때 저 솔직히 눈물 나더라고요.”
“왜 안 섭섭했겠니. 나도 처음에 우리 시어머니가 시장 도맡아 하라고 할 땐 벼락이라도 맞은 듯했는데. 그래도 이 전어 때문에 집 안 나가고 여기에 뿌리내리고 있던 거 아니겠냐.”
오랜만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만인가 싶다. 시장의 비릿한 생선냄새 대신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적당히 기름기가 낀 전어의 고소한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