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오늘은 승호가 가장 기다리는 날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눈을 뜨자마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갑니다. 오늘의 목적지가 궁금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빠는 어떤 영문인지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빠 다리에 매달려도 보고 힌트라도 달라고 졸라보아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그저 잠자코 아빠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궁금증과 기대에 한껏 들뜬 승호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동생인 연호에게 자랑도 늘어놓았습니다. 드디어 출발입니다. 아빠 차에 탄 승호는 엄마와 동생에게 인사를 한 뒤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승호는 그만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뒤 무려 3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잠에서 깬 승호는 도로 이정표를 보고 강원도 태백에 와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승호는 속으로 오늘 아빠와 둘이 등산도 하고 맛있는 한우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그런데 도착한곳은 태백산도 아니고 한우고기집도 아닌 석탄박물관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급격히 실망한 승호는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아빠가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고 여기로 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일단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책에서만 보던 광부들이 캄캄한 동굴에서 석탄을 캐는 모습과 그 시대 광부들의 삶을 모형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형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아빠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옛날에 승호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아빠가 딱 승호만한 나이였을 때였어.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승호 할아버지는 여기 보이는 사람들처럼 석탄을 캐는 광부셨어. 할아버지도 이렇게 검은 때가 온 몸을 뒤덮어도 열심히 일하셨지. 우리 승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삼겹살 있지? 그것도 사실 이렇게 하루 종일 탄가루에 뒤덮여 있는 광부들이 검은 가루가 씻겨 내려가라고 먹었던 음식인거 알았니?
그리고 아주 가난하던 시절 가족들의 끼니와 교육을 위해 앞이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 막장에서 땀 흘려 일하셨단다. 할머니는 노란 양은 도시락에 부족하지만 정성스레 담은 도시락을 매일 싸드렸어.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지. 달그닥 달그닥 빈 도시락 통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도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셨던 모습이 생생해. 석탄 캐는 일이 목숨을 내놓고 일할만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도시락 소리가 들려야만 안심을 하곤 했었지. 승호 넌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멋진 일을 하시던 분이셨어.”
이야기를 하는 아빠의 눈이 잠시 붉어졌습니다. 개구쟁이 승호도 이야기를 듣고는 얌전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습니다. 아빠가 왜 오늘 다른 곳이 아닌 태백에 석탄박물관에 왔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승호는 4시부터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두 시간 뒤에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실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승호는 아빠와 석탄박물관에서 들었던 아빠의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아 아빠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빠 몰래 승호가 맛있는 저녁밥을 만들어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서툰 솜씨지만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아빠가 들어오셨습니다. 으쓱한 마음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가 품안에 쏙 안기며 아빠를 위한 멋진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삼겹살에 돼지고기 김치에 돼지껍데기 등 돼지고기로 가득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빠 귀에 대고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아빠, 아빠도 할아버지처럼 정말 멋진 아빠에요!”
아빠도 승호도 정말 푸짐하고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시장에 갈 때면 줄곧 나를 데리고 가셨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사람구경 많이 해보겠노 하면서 고사리 손을 꼭 잡고 시장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셨다. 작은 아이의 눈에 비친 시장은 없는 것 없는 만물상자 같았다. 엄마는 시장에 오시면 항상 마늘 한 접을 사셨다. 요즘 마트에는 깐 마늘이며 다진 마늘이며 편하게 나온 것들이 많은데 엄마는 항상 흙 묻고 주렁주렁 매달린 통 마늘을 사오셨다.
집에 오면 신문지 하나 깔고 구부정한 자세로 마늘을 까셨다. 그러면서 매우신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엄마에게 슬퍼서 우는 것이냐고 물은 적이 있고 엄마는 아니라고 했다. 그냥 눈이 매워서 그런 것뿐이라고 했다. 엄마의 구부정한 등허리가 흐느낌에 들썩였다.
엄마의 시집살이는 마늘만큼이나 매웠다. 아빠는 엄마와 할머니 사이를 방관하였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쥐 잡듯이 잡았다. 엄마는 할머니가 이러는 것이 할아버지 때문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 계셨기 때문이다. 중풍으로 쓰러지신 것이 엄마 때문도 아니었는데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이후로 엄마를 못살게 굴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시는 바람에 할아버지 뒤치다꺼리까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엄마를 더욱 못살게 굴었다.
서슬이 퍼런 눈매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따지고 들었고 서방 기 빨아먹는 것이라며 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쪽방 구석에서 귀를 막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한 소리를 듣고 나면 나에게 시장에 가자고 했다.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손을 꼭 잡으면 엄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도 살 것이 마땅치 않으며 한 바퀴를 더 돌곤 했다. 애호박과 마늘, 부추를 사고 난 뒤 마지막으로 마늘 한 접을 또 샀다.
엄마는 주방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마늘을 깠다. 하나 두 개를 까다보니 또 눈이 매운 모양이었다. 엄마의 구부정한 등이 들썩거렸기 때문이다. 나는 마늘이 엄마를 괴롭히는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동그마니 몸을 말고 앉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마늘 깔 때마다 울면서 왜 시장갈 때마다 마늘을 사?”
“마늘이 몸에 좋으니까 그렇지.”
“마늘이 몸에 좋아? 그렇지만 너무 맵잖아.”
“매우니까 먹는 거야. 매우니까.”
엄마는 대답을 하면서도 훌쩍거렸다. 눈물과 콧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곧 외출했던 할머니가 오실 시간이기 때문에 엄마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해도 엄마는 ‘아서’라는 말을 하며 만지지 못하게 했다. 나는 마늘을 까도 맵지 않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마늘 정리를 하고 있는 엄마를 곁눈질로 힐끔 보시더니 ‘뭐하려고 맨날 마늘이고.’라고 중얼거리며 쿵 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중얼거리는 소리도 놓치지 않고 ‘의성마늘이 매콤한 게 혈액순환에 좋다고 하잖아요, 풍에도 좋지 않을까 해서.’라고 대답을 했으나 이미 할머니가 방문을 있는 힘껏 닫고 들어간 후였다. 나는 할머니가 들어간 방문이라도 흘겨보았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엄마를 왜 이렇게 미워하냐고 물으려다가 그럼 못쓴다고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어서 그러지는 못했다.
엄마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마늘은 ‘매움’ 그 자체였나 보다. 엄마의 굽은 등허리가 들썩거릴 때마다 마늘은 더욱 매워졌는지도 모른다.
쏴아아 부서지는 파도소리만 무성하다. 시간을 조금 더 지체하면 학교에 지각을 할 시간이지만 애꿎은 모래알만 매만지고 있다. 걸어갈 때마다 도시락 가방에서 나는 달각달각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늘 억척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순댓국 장사만 벌써 20년째다. 늘 푹푹 찌는 큰 솥 앞에서 걸핏하면 대낮부터 술 한 잔 걸친 공사판 아저씨들 앞에서 걸걸한 말을 하며 지낸 세월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늘 도시락에 머릿고기와 순대 그리고 새우젓만 싸주셨다. 나는 그런 엄마가 미워 일부러 도시락을 놓고 간 적도 있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신애는 점심시간이 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엄마는 내가 일부러 놓고 간 것을 알아챘는지 복에 겨워서 저런다며 한 소리 했다.
모래알만 매만지던 나는 터덜터덜 교실로 들어갔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국어시간이었고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를 배웠다. 모래톱이야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우의 이야기인지 나 자신의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나룻배를 타고 통학하는 건우.
갯배를 끌고 나가 통학하는 나.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가진 섬마을에 사는 건우.
실향민들로 이루어진 아바이마을.
내가 살고 있는 아바이 마을은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적셔있는 마을로 어려웠던 전후시대를 살아오며 고단하고 억척스러운 곳이었다.
부둣가로 올라오면 생선 비린내가 자욱했고 쪼그려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움푹 파인 마음의 주름을 부서지는 파도에 쓸어내리는 그런 곳.
나는 창밖에 부서지는 모래성을 바라보았다. 아슬아슬 하얀 거품에 스러지지 않기 위해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는 모래성이다. 쏴아아 쏴아아 겁 없는 파도는 모래성으로 돌진하였고 결국 파도는 모래성을 집어삼켰다.
모래톱 이야기에서 건우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분단으로 인해 고향으로 가지 못한 설움이 남아있는 곳. 파도가 그 설움마저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무심하게 발로 도시락 가방을 톡 건드려본다.
‘달각’ 소리를 낸다.
윗동네에 사는 은서가 도시락 가방을 들고 내 자리로 왔다. 나란히 앉아 도시락 가방을 연다.
은서는 새하얀 쌀밥에 멸치볶음에 장조림을 싸왔다. 내 반찬은 어김없이 머릿고기에 순대 그리고 새우젓일까.
어쩌면 나도 멸치볶음에 장조림을 싸주지는 않았을까?
창밖의 갯배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신기한 듯 갯배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이 갯배를 타고 오고간다. 신기한 듯 배를 타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드라마 때문일까 어느 날 부턴가 갯배는 헤어진 연인들의 아련한 추억의 공간이 되었고 짙은 녹색에서 희미한 푸른색의 느낌을 띄기도 했다.
반찬통을 열기도 전에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도시락 가방을 두고 갔던 날.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내가 싫었던 건 엄마도 아니고 돼지 비린내도 아닌 ‘달각’소리였다는 것을.
반만년의 무게를 담고 오랜 세월의 흐름은 무상한 듯 고요히 흐르는 푸른 한강 위에 돛단배가 유유히 흐른다. 노를 젓는 사공도 없이 뉘엿뉘엿 흘러가는 강물 따라 흘러내려 간다. 저 멀리 보이는 포구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푸른 한강에서는 한가롭게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강나루에는 신록이 짙어져 버드나무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아차산의 푸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나는 아차산에 올라 광나루를 내려다본다. 언젠가는 이란 경치를 벗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작은 텃밭에서 상추, 고추, 가지 등을 가꾸면서 낚싯대 하나 등에 메고 패랭이 하나 쓰고 그저 느긋하게 낚시를 즐기고 싶다. 광나루에 앉아 낚시 던져놓고 그저 여유롭게 낮잠이나 자는 삶이 얼마나 한가하지만 여유로울까.
나는 현재의 최고 명문가인 안동 김씨의 후원을 받고 있다. 나는 그를 위해 그의 집인 청풍계(淸風溪)를 여러 번 그려줬다. 내가 그린 청풍계 그림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사람들은 신선의 솜씨라며 나를 칭송한다. 여기에 성상께서도 나를 후원해 주고 계신다. 나는 성상을 세제(世弟) 시절부터 그림 스승이었을 정도다. 하지만 나의 예술혼은 채워지지 않는다.
수십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림을 본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어찌 이런 그림을 단 3일 만에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사람의 솜씨가 아니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자신이 사는 곳을 그려냈구나.”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마음을 뺏기고 어찌하면 나 역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수없이 고민하고 수없이 그리기를 수십 년. 수백 장의 화선지에 검은 묵과 종이의 여백을 살려 수없이 그리고 찢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이곳 광나루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아차산과 한강이 어우러지는 아리따운 경치와 함께 이곳은 권문세가들의 별장이 있어 자연과 인간의 건축물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모습과 우리의 시대를 한 폭의 그림에 그리고 싶다. 마치 신선이 사는 몽유도원도처럼...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그리고 내가 사는 현재를 그리고 싶을 뿐이다. 아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나루터에 묶인 두어 척 나룻배와 한강을 가로질러 쉴 새 없이 다니는 돛단배, 그리고 그 안에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들이 가득 타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풍류를 즐기고 있다. 나는 그리고 싶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신선이 노니는 곳처럼 말이다.
그렇게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해 나는 전통적 수묵화법이나 채색화를 나 나름대로 해석해 나만의 필묵법을 개발했다. 세간 사람들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고 내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선비나 직업 화가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겸재파 화법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이제 나만의 화법으로 '광진'을 그리고 있다. 광진은 도성 안에서 살곶이다리를 거쳐 광진길을 따라 이르게 되는 강나루로, 여기서 배를 타야 강 건너 삼전도로 갈 수 있다. 이상향의 존재하지 않는 산수를 그리는 것이 아닌 실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산수를 하나의 붓으로 백색 화폭에 담아 꿈을 꾸는 것 같은 환상을 자아내고 싶을 뿐이다. 그것의 나의 ‘광진’인 것이다.
흰 눈발이 내리는 겨울이면 어김없이 군고구마 장수와 붕어빵 장수가 눈에 띤다. 집 앞 작은 골목 앞에 있는 따끈한 붕어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골목에 고소한 붕어빵 냄새가 나면 출출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흰 봉지에 군고구마와 붕어빵을 가득 담아가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붕어빵 천 원어치에 몇 갭니까?"하고 물으면 "세 개 인데 네 개 드릴게요."하며 따뜻한 마음까지 덤으로 주시곤 했다.
아버지는 유난히 이곳 붕어빵을 좋아하셨다. 내가 간혹 빈손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거기 붕어빵 장수 오늘은 쉬나? 하며 내심 붕어빵장수의 안부까지 물으시곤 하셨다. 아버지 덕분에 붕어빵 포장마차의 단골이 된 나는 가끔 붕어빵 장수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붕어빵 장수는 한쪽 눈이 불편한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어빵을 휙휙 돌릴 때면 그 노련함에 박수를 칠 뻔한 적도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버지를 위한 붕어빵을 사가려고 포장마차에 들렀다.
“또 오셨네요.”
“네. 오늘은 날씨가 더 추워진 것 같아요. 오래 서계시면 감기 드시겠어요.”
“저는 불 앞에 있는데요 뭐. 추운 줄도 몰라요. 오늘도 아버지 붕어빵 사드리려고 오셨나봐요?”
“저야 그렇지요 뭐,”
“허허. 그런데 아버님은 붕어빵 질리지도 않으신대요?”
“질리긴요. 언제는 깜빡하고 빈손으로 가면 섭섭해 하신다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요기 포장마차 열었나 안 열었나부터 확인한다니까요.”
“아무튼, 매번 참 고마워요. 단골이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추우실텐데 이거라도 하나 드시고 계세요.”
“아저씨는 몸도 불편하시고 추우실텐데 어쩜 매년 겨울이면 하루도 안 빼먹고 이렇게 나오세요?”
“춥지요. 추운데 이렇게라도 안하면 집에 혼자 계시는 노인네가 더 추울 것 같아 이렇게 몇 푼이라도 벌어 가는 거지요. 그래야 집에 불도 피우고 생선 한 마리라도 사가지요. 이런 말도 부끄럽지만.”
“부끄럽긴요. 우리 동네 효자가 여기 계셨네.”
“효자라니 당치도 않아요. 그저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이지요.”
그렇게 말을 하는 아저씨의 장갑은 많이 낡아있었다. 목장갑은 붕어빵을 돌리는 꼬챙이 때문에 닳아 구멍이 나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 보세요.”
“네, 안 그래도 오늘 아버지 생신이라 일찍 들어가려고 했어요. 남은 붕어빵은 아버님께 드리는 제 선물이에요. 단골분께 드리는 제 선물이요,”
아저씨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흰 봉투 가득 붕어빵을 담아주셨다. 아저씨의 한쪽 눈은 찡그러져 있었지만 어느 때보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손수레를 끌고 오르막을 올라갔다.
혼자 계실 아버지를 위해 여느 때보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오르고 또 올라갔다.
양손 가득 붕어빵을 들고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신다.
“무슨 붕어빵을 이리 많이 사왔노? 붕어빵 털어 왔나?”
“네. 붕어빵 장수가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이래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니까요.”
“그래? 고맙네. 고마워.”
아버지는 달고 따뜻한 붕어빵을 머리부터 덥석 드셨다. 품에 품고 와서 그런지 붕어빵에서는 아직도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돌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승우.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지 아니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는지 모를 만큼 표정이 복잡 미묘하다. 이곳은 돌탑을 구경 온 사람들과 돌탑에 빌기 위해 오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 듯했다. 조용히 돌탑을 바라보는 승우 옆으로 단체 관광객들이 이 돌탑에 대해 아는 지식이 많은 양 가타부타 떠들어 댔고 그 말 중에서는 거센 태풍이 휩쓸고 갔어도 이 돌탑만큼은 쓰러지지 않았다고 한다며 놀라워했다. 돌탑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저 높이 올라간 돌만큼이나 굳건했다. 기이한 현상일까. 그도 그럴 것이 돌탑 바로 옆에는 지난 태풍으로 인해 쓰러진 나뭇가지가 그 현상의 미스터리함을 더했다. 승우는 돌연 생각에 잠겼다.
평소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살아온 승우였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떠들어대는 귀신 이야기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눈 하나 깜박 않고 넘겨오던 그였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재미없는 녀석이라고 웬만한 과학자들도 너보다는 덜 이성적일 것이라며 치를 떨기도 했다.
아마 그의 어머니가 지극히 미신을 믿어서일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점쟁이를 찾았고 운세를 보러 다녔다. 그렇게 극성을 떨던 어머니가 차마 집안에 굿판을 벌일 수 없었던 것이 승우 때문이리라.
아들인 승우가 수능을 칠 때에도 사법고시 시험을 칠 때에도 어머니는 극성을 떨었다. 마음 깊이 기도를 드렸고 지금 승우가 서 있는 이곳, 마이산 돌탑을 찾았다.
돌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성적인 아들의 명석한 두뇌 때문이었을까 승우는 원하는 학교에 붙었고 사법고시도 한 번에 붙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지셨다.
‘그렇게 찾아다닌 점쟁이는 엄마가 쓰러지실 것을 알았을까. 알았으면 귀띔이라도 해줄 것이지. 그럼 그렇지. 그런 미신들 다 소용없으니까 그렇게 누누이 믿지 말라고 말했건만.
그렇게 돈 갖다 바치고 시간 갖다 바치면 뭐해 정작 엄마는 이렇게 쓰러져 있는데.
내 말 들리지 엄마? 엄마 이젠 눈 좀 떠봐. 아들 왔어.’
심장박동을 알리는 그래프는 전혀 미동도 없었다. 승우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힘껏 잡으면 그래프가 조금은 더 힘차게 움직이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래프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선을 이루며 그래프를 그려나갔다. 엄마의 손을 잡고 있던 승우의 손에도 조금씩 힘이 빠졌다. 손을 잡고 있는지 손을 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손에 힘이 빠졌다.
승우는 돌탑을 찾기 전에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실을 들렸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운세를 이야기하던 엄마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다. 얕은 숨을 몰아쉬며 아기같이 쌔액쌔액 거렸다. 곧 깨어나시겠지. 승우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이곳에 누워있고 엄마가 나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다면 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의사의 말을 믿었을까 아니면 점쟁이 말을 믿었을까.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해도 점쟁이는 굿을 한번 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다고 엄마를 꾀겠지. 아니 엄마의 지갑을 꾈 것이다.
승우는 다시금 돌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여전히 관광객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탑을 바라보았고 저마다 소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돌을 찾아다녔다. 승우도 그 무리에 묻어 매끄러운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누군가가 올린 돌 위에 살포시 올려보았다.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리고는 여전히 미신은 믿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돌탑이 거센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았다니까. 엄마도 저 거센 돌탑처럼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진 않을 것임을 믿었다.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를 되찾을 것임을.
승우의 돌이 오르기 전 바로 밑에 있던 누군가가 올린 돌, 그것이 엄마가 그 전에 올린 돌일지는 알 수 없었다.
결혼을 앞둔 여자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과 설렘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핑크빛일 테고 파스텔 톤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상견례와 결혼 날짜까지 한 큐에 끝내버리고 요즘은 친정엄마와 혼수를 보러 다니고 피부숍을 다니며 생애 한번 있을 아름다운 날을 위해 온 신경을 쏟았다.
서른둘의 나이. 요즘으로 치면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라지만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훈수 덕에 그녀의 머릿속은 적잖이 복잡해졌다. A는 근사한 카페를 통째로 빌려 피아노를 치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프러포즈를 받았다더라. 친구 B는 청담동으로 시집간다더니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몇 세트를 받았다더라 하는 말들이 자연스레 들렸고 친구들은 며칠 굶주린 하이에나들처럼 여자의 결혼에 관심을 기울였다.
여자는 신경 쓰지 않고 남자친구에게 내색하지 않기로 마음먹고도 내심 신경이 쓰였고 기대가 되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그럴 거라며 자신은 속물이 아니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남자친구에게 대뜸 나 어디서 어떻게 프러포즈해줄 거냐.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줄 거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무엇보다 남자친구의 형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여자의 얼굴엔 점점 그늘이 드리웠다.
오늘 예쁘게 입고와. 일 끝날 때 맞춰서 데리러 갈게.
남자친구의 문자다. 여자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예쁘게 입고오라니, 왜? 혹시 프러포즈하려고 그러나? 그렇담 뭘 입어야 하지? 야외에서 하면 좀 쌀쌀할 텐데 겉옷을 준비해갈까? 눈물을 흘려야 하나? 여자는 30초간의 짧은 순간에 몇 가지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귀여운 것. 조금 무뚝뚝하긴 했어도 예쁘게 입고 오라는 힌트까지 주다니. 여자는 한껏 들뜬 마음을 즐겼다. 언제 또 이렇게 행복하겠느냐며 이 순간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여자는 자신이 아끼던 옷을 꺼내 입고 싱글벙글 하며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는 칼같이 여자를 데리러 왔다.
“어디 가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건데? 응? 왜 예쁘게 입고 오라고 했어? 어?”
여자는 남자의 차에 타자마자 콧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질문을 쏟아 부었다. 남자는 가보면 안다며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았고 여자의 기대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그런데.
남자는 카페를 빌리지도 근사한 곳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았고 무릎을 꿇으면서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심히 스윽 건네는 반지케이스 하나.
이게 뭐야. 여자는 기쁨과 감동의 눈물을 준비해왔으나 서러움으로 흘릴 줄은 몰랐다. 여자는 기쁨도 감동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반지케이스만 바라보았다.
“실망했어?”
그걸 말이라고. 여자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내뱉지 않았다.
“어떤 반지인지 궁금하지 않아?” 라고 말하며 반지케이스를 열었다.
붉은빛이 선명한 반지다. 루비인가. 동시에 남자가 말한다.
“루비 아니야. 빨간색을 띄는 희귀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내가 하늘에 떠있는 별을 따다 달래 달을 따다 달래. 그냥 말 한마디 아니 말 한마디가 어려우면 꽃이라도 아니 꽃도 어려우면 노래라도. 그만하자.”
“알아. 네 마음. 섭섭하겠지 속상하겠지. 그런데 반지 꽤 의미 있는 거야. 이게 1월 탄생석으로 만든 거거든. 당신 생일이자 우리 결혼기념일이 될 1월.”
여자는 애써 침착하게 반지를 바라보았다.
“다음번 결혼기념일에는 근사한 카페도 빌리고 백송이 꽃도 준비하고 피아노도 배워서 노래도 불러줄게. 더 예쁜 반지와 함께.”
좀 전에 남자가 내민 보석은 가넷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아침부터 밖은 소란스러웠다. 웅성거리는 곳에서 드문드문 들리는 이야기를 조합해보니 오늘 하루 동안 정전일거라는 이야기였다. 암막커튼을 달아놓아 방안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어두웠다. 불면증이 심한 내가 고안해 낸 최선의 방법 중 하나였다. 아무런 빛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느지막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오후 2시 반이다. 밖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소식이 있다고 하더니 밖은 아직 어둠이 내려앉을 시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했다.
“정전이면 텔레비전도 다 안 나오는 건가?”
나는 조그맣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부스스하게 일어났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전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별다를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은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을 집어 들었으나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웅성거리며 켜져야 할 텔레비전은 켜질리 만무했다. 아차, 싶은 마음에 부엌으로 갔다.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즉석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물론 이 고철덩어리도 반응할리 없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선반에 놓인 수분이 날아간 식빵 한 조각을 입에 구겨 넣었다. 아직 어두운 밤이 오지 않았음에도 정전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마치 어두운 동굴 안에서 원시생활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다. 문명과 닿아있는 유일한 끈,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보니 배터리도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불빛도 없이 소파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으려니 나 자신이 무기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문득 빛이 보고 싶어졌다. 베란다 창고에 가서 촛불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자신 있게 팔을 걷어붙이고 창고에 발을 들였으나 어두운 곳에서 촛불하나 찾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와당탕하고 아슬아슬하게 얹어놓은 살림살이들이 머리위로 쏟아져 내렸고 촛불을 찾기는커녕 천둥소리에 놀라 후다닥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조명이 없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덩그러니 소파에 앉아있는데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성냥하나 켜면 맛있는 음식들이 떠오르고 또 하나의 성냥을 켜니 따뜻한 방안이 떠오르고 마지막 하나의 성냥을 켜며 잠이 들었다지. 성냥팔이 소녀에게도 있던 성냥이 나에게는 없다. 고로 빛을 찾아 나서야 했다.
우산 하나만 챙겨 나온 밖엔 비가 그쳐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어둠은 그대로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휘황찬란했다. 여러 간판과 가게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들로 눈이 부셨다. 불과 몇 시간동안 빛을 못 본 것뿐인데 빛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토끼눈을 떴다.
문득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꼭 가보고 싶다던 곳이 있다고. 필룩스 조명 박물관에서 크리스마스 특별전을 열었다고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조명 조형물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했다. 망설일 필요가 없다. 필룩스 조명 박물관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입장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나름 여유 있게 박물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곳은 거리에서 본 찬란한 조명과는 다른 느낌의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풍겼다.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비롯하여 빛이 없던 시대의 이야기부터 현대의 조명 그러니까 일상생활 속 조명의 역할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찬찬히 둘러보면서 낮에 있었던 정전사태를 떠올렸다.
빛은 있어야 했다. 애써 어둠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깔리는 대로 어둠을 놔두면 되고 날이 밝아오면 밝는 대로 밝음을 즐기면 그만이었다.
빛을 받은 조형물들은 아름다웠다. 친구가 말한 대로 크리스마스에 왔더라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까지 들었다. 폐장시간이 다 됐는지 드문드문 관람을 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은 그리고 내 방안은 여전이 어두웠다. 나는 내 방안에 쳐있던 암막커튼을 확 걷었다. 어두웠던 집안이 한층 밝아진 듯 했다. 마치 은은한 조명을 하나 켠 것처럼. 그리고 조그맣게 혼잣말을 했다.
‘오늘 하루는 꿈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