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후배 한 명이 미리 주는 생일 선물이라며 김광석의 베스트 앨범 한 장을 건네 왔다. <서른 즈음에>라는 곡명에 형광펜으로 체크가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나를 곯리려 작정을 한 것이 분명했다. 괘씸하기는 했지만, 명곡은 명곡이었다. 신세대라고 하기에는 구세대이고, 구세대라고 하기에는 신세대인 어정쩡한 나이가 된 나는 이수영이나 성시경의 노래보다는 김광석의 노래를 더 사랑했다.
헤어진 전 여자 친구이기도 한 후배는 ‘술 좀 줄이시고요.’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또 마침 소주 안주로 제일인 것이 김광석의 노래라 하지 않았는가.
결국 과음을 한 탓에 다음 날 수업에 나가지 않자, 후배가 뺨을 붉히며 숙취 해소 음료 하나를 건네 왔다. 후배의 복잡한 표정에서, 그 애가 못다 한 말들이 읽혔다. ‘선배님, 장난 치고는 좀 심했죠.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하실 걸 모르는 게 아닌데. 기분 전환이나 하시라고 드린 선물이었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하고 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 대신, 뜬금없이 대구에 있다는 김광석 길에 함께 가주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술이 덜 깨서일까, 아니면 김광석의 달콤하고도 쌉쌀한 노래들을 어제 하루 종일 들어서였을까. 아차 하는 마음에 미안하다고 말하려 하는데, 후배가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가 다음 수업이 있다며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나간 뒤에도, 나는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후회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다.
술은, 정말로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다. 헤어진 후로 몇 달이나,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었다. 그러던 와중에 선물로 받은 것이 김광석의 앨범이요, 몇 달 만에 들어보는 따뜻한 말이 술을 좀 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광석의 노래가 내 방을 가득 채우니 술이 고픈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거쳐 타이틀곡인 <변해가네>까지는 그럭저럭 견뎠지만,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냉장고를 열고 소주병을 꺼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 농담처럼, 내게도 서른이 왔다. 철부지 새내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몇 번의 작은 성공과 몇 번의 연애, 그리고 몇 번의 쓰린 실패 끝에 내게도 서른이 오고야 만 것이다. 잦은 휴학에, 아직 대학 졸업장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안주 없이 소주잔을 비우며 몇 방울의 눈물을 떨궜던 것 같기도 하다. 서른이라는 막막한 숫자 앞에, 그리고 서른이 되도록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거울 앞의 내 모습에 말이다. 내 인생의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며, 내 안의 어떤 것이 같이 죽어버렸다. 울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아버지의 시신을 보았을 때, 영영 무너지지 않을 아버지의 철옹성 같던 어깨가 실은 작은 새처럼 여린 것이었음을 알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가장 크게 믿던 사람이 그렇게 한 순간에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현석아, 네가 이제 우리 집의 기둥이여.”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이 싫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버팀목 역할을 맡아야 했고, 그 자리가 두려워 계속 뒷걸음질만을 치다가 끝내 주저 앉아버리고야 말았다. 우스운 노릇이었다.
다가온 주말에 나는 정말로 후배와, 아니 내 전 여자 친구와 함께 대구행 기차를 탔다. 여전히 조금은 어색한 사이였기에 애초에 많은 대화가 오가지도 않았고,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아 간간히 오가던 대화마저 완전히 끊겨 버렸다. 서로 감정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연애는 이미 지난 일이었다.
그 나른한 봄의 정적 속에서, 나는 잊고 있었던 풍경 하나를 기억해 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서른 즈음에 있었던 일을 말이다.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김광석의 노래를 열창하셨다. 다른 어떤 노래도 아닌, <서른 즈음에>를. 그것도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라는 부분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부르셨다. 비어가던 서른 살 아버지의 가슴을 다시 차오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툭, 하고 내 어깨 위로 고개 하나가 기울었다. 그 애가 봄기운에 취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것을, 나는 서른 즈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너를 기억하는 건 뭐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것이 없어 풀죽어 있던 내게 가장 아끼는 오르골을 준 것이었다. 조그마한 오르골이 돌아갈 때면 아름다운 소리가 리듬에 맞추어 흘러나왔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였다. 너는 발레리나가 꿈이라고 했다. 꿈이라기보다는 장래희망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너는 세계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고 나는 그런 너의 발가락을 바라보았다.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 멋진 꿈이다. 세계최고가 되려면 발레를 얼마나 잘해야 할까?”
“아마 유학도 다녀와야 하고 콩쿨에 나가 상도 받아야겠지.”
꽤나 당찬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너를 보니 정말 세계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 발레복을 입고 사뿐사뿐 공중을 나는 너를 떠올리니 멋있다고 생각되었다. 이국적인 멋은 달리 형용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멋’으로 단정 지을 수 있달 까.
반면 나는 여전히 뭐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것이 없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네가 내 손에 쥐어주었던 오르골을 꺼내보았다. 약간은 녹이 슬어보였지만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지그시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그래, 엄마가 들려주던 가야금 소리와 비슷한 것 같은데?’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소리를 비슷하다고 느낀 건 왜일까.
서재 깊숙한 곳에 먼지와 함께 박혀있던 가야금을 꺼냈다. 엄마를 따라 몇 번 튕겨본 적은 있었으나 손끝에 물집이 잡힌 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악기이다. 다른 아이들이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연주할 때 가야금을 연주한다는 것이 괜히 싫었던 적도 있다.
후. 하고 가야금에 쌓인 시간의 흔적을 털어냈다. 세월은 흘렀어도 가야금은 여전히 쟁쟁한 소리를 냈다.
손끝으로 세게 튕겨보았다. 여전히 손끝이 아렸다. 한 번 더 튕겨보았다. 공중을 가르고 소리가 울렸다. 제법 괜찮은 소리가 났다. 엄마는 뜬금없이 가야금은 왜 꺼내느냐고 청승맞다고 말했지만 내심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 같았다.
엄마는 꽤 유망한 가야금 명인이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야금을 살포시 무릎에 얹어 손끝으로 음을 집어내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첫눈에 반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엄마는 나도 엄마를 따라 가야금을 하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기대를 모른척했다. 가야금은 엄마의 직업정도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좀 더 강하게 뜯어야지 소리가 나지.”
엄마가 한참을 듣고 있다 말씀하셨다. 엄마의 말대로 줄을 강하게 뜯어보았다. 울림이 들어간 소리는 꽤 웅장했다. 눈을 감고 백조의 호수의 음을 짚어보았다.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던 선율처럼 내 손끝을 타고 고고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참을 가야금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가야금은 그저 그런 악기였는데 어쩐지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뭐하나 특별하게 잘 하는 것이 없는 내게도 특별함이 있지 않을까?
한참을 말없이 가야금만 바라보았다.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거야. 그러려면 유학도 다녀와야 하고 콩쿨에 나가서 상도 받아야겠지.’
나는 어쩐지 네가 가엽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너는 녹이 슨 오르골처럼 흔들리고 있지는 않을 까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도 녹이 슬지 않는 가야금은 점점 더 멋드러진 소리를 냈고 그 위에 살짝 손을 올려놓았다.
오늘도 조용히 어머니가 작은 소반에 밥과 국, 반찬을 담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민철의 점심을 주기 위함이었다. 몇 날 며칠 술에 취해 사네 못사네 하던 아들을 위해 조용한 걸음으로 콩나물국을 끓여온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놈의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한 바가지 했을 아버지였지만 그저 잠잠히 신문만 바라보신다.
민철은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다. 아버지가 소리 한번 크게 내실 때면 심장이 떨려 오줌을 지린 적도 있었다. 민철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정하게 학교를 데려다 주는 친구의 아버지나 학원을 땡땡이쳐도 눈감아주고 함께 분식집에 들어가는 아버지. 민철에게 그런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옆집 아저씨라면 모를까.
그맘때 아이들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놀이공원 가족사진. 민철에게는 사진 대신 민철이 그려놓은 그림 한 장뿐이었다. 그림에도 아버지는 없다. 엄마와 민철 그리고 남동생뿐.
설사 그 그림을 아버지가 보았다고 해도 민철이 아는 아버지라면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았을 거다.
민철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담배를 피웠다. 가끔 술도 마셨으나 다행히 민철에게 권하지는 않았다. 민철은 친구들이 소위 나쁜 짓을 할 때에도 아버지가 무서워 일탈을 꿈꿔본 적도 없다. 혹 꿈에 그런 장면이 나왔더라도 놀란 마음에 하루 종일 가시방석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민철은 대학도 부모님이 원하시던 의대에 갔고 크게 속 한 번 썩힌 적이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민철에게 큰 사건이 터졌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의료사고.
단순히 민철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환자 가족들도 크게 노여워하지 않았지만 민철은 혼란에 빠졌다. 처음으로 자신이 집도한 환자가 생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민철은 의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다시는 메스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고가 있고 난 뒤 민철은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몇 날 며칠을 술로 지새우던 그에게 아버지가 조용히 다가갔다.
“옷 챙겨 입고 나와라.”
민철이 대답을 하기도전에 아버지는 조용히 낚시도구를 챙기셨다. 집 밖을 나가기도 싫었던 민철도 웬일인지 말없이 따라나섰다.
아버지가 낚시를 간다고 하면 어김없이 오던 곳이다. 그곳에서 둘은 하염없이 낚싯대만 바라보았다.
“미안하구나.”
낮은 음성으로 아버지가 말했다. 민철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며칠째 술만 퍼마셔서 그런지 헛것이 들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미쳐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다.
“많이 힘드냐. 자식 다 큰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그 사람 목숨 생각하면서 더 많은 사람 목숨을 위해 노력하면 되지 않겠냐.”
그렇게 무섭던 아버지가 왜 미안하다고 하셨을까. 그리고 아버지가 미안해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어릴 적 놀이동산에 한번 데려가지 않은 일일까 아니면 회초리 한 대 정도면 될 것을 열대를 때리고도 모자라 씩씩거린 일을 말하는 걸까.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는지 던져놓은 찌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아버지도 민철도 낚싯대를 건져 올리지 않았다. 다시금 찌가 잠잠해졌다. 미끼만 먹고 달아났다 보다.
아버지는 민철이 어렸을 적 이곳에 온 적이 있다고 했다. 민철이 기억을 못 하는 것일까. 아니면 민철의 기억 속에 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민철이 스스로 지운 것일까.
민철은 퉁퉁 부은 아버지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이 시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낚시터를 빙 둘러볼 뿐이었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이렇게 뛴다네. 내가 이 합천 흙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네.
이 늙은 소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겠나?
때는 고종23년 때였지. 그때의 고려는 바람이 부는 등불 앞에 촛불과 같았다네. 몽골의 침입이 끊이질 않았고 전쟁 통에 백성들은 두려움에 치를 떨었지.
끊임없는 약탈과 협박으로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지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여겨지기도 하였지. 왕실이 휘청거렸지만 무신들은 달랐다네. 끝까지 싸워 이기고자 하였지.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네. 끝이 보이지 않던 전쟁에 몽골군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을 게야. 그래서 그때의 고려의 힘과 정신으로 버텨가던 맥을 끊어버리려 했던 거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시커멓게 타는 것 같다고.
성벽만 공격하던 몽골군은 군사를 이끌고 대구 부인사로 향했다네. 그리고 그곳에 모셔두었던 초조대장경 판목을 불에 태워버렸어. 나라의 뿌리였고 백성들이 버티고 버티던 마지막 정신이 함께 불타버린 것과 같았다네. 당시 고려는 불교를 나라에 힘이라 믿었고 나라가 부강해 질 수 있는 원동력이라 믿었다네. 그런데 그러한 대장경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만 셈이지.
백성들은 물론이고 고려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고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천리 밖 아니 만리 밖까지 새어나가, 문인들과 무인들은 혼란 속에 빠진 백성과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했다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도가 하나 있었지. 바로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 다시금 민심을 끌어 모으기 위한 팔만대장경을 만들기로 한게야. 하지만 팔만대장경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 계속된 전쟁 통에 대장경을 만들 재료도 부족했고 나무도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습도와 통풍이 잘 되는 곳에 터를 잡아야 했어. 그래서 이곳에 그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팔만대장경 재건에 나섰다네.
부처의 말씀을 목판에 새겨 넣은 것으로 먼저 굵기가 40cm이상이 되고 곧은 나무를 베어 길게는 2년 정도 진을 빼야 한다네. 경판 하나 준비하는 것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지.
그런 뒤 경판이 건조되어 비틀어지지 않도록 경판을 소금물에 담 궈 두었다가 건조를 해야 한다네. 그렇게 소금물에 삶고 찌며 온 정성을 다해야 했다네.
그렇게 판자가 만들어지면 정해진 두께에 맞게 판자를 다듬어 나가야 한다네. 그리고 경판을 새길 때에는 엄밀하고 정성스럽게 새겨야 했다네. 마치 한 사람이 쓴 듯이 말이네. 이때에 경판을 작업한 스님들은 글자 한자 한자를 새길 때마다 절을 하였다네. 그리고 글자를 새겨 넣을 때에는 먹지도 자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지. 나라를 위하는 마음과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는 간절함을 가지고 한 자 한 자를 새겨 내려갔다네.
한 획 한 획 지극히 간절한 믿음을 쏟아냈고 혼을 불어 넣었다네. 그렇게 판자에 모든 말씀을 새겨 넣었다네. 그렇게 새겨 넣은 판자가 오래 보관될 수 있도록 경판에 옻칠을 했다네. 목각판에 옻칠을 한 것은 팔만대장경이 유일하였지.
그렇게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단순히 부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이 아니었다네. 고려의 혼과 총력이 담겨있고 나라를 위하는 간절한 마음과 숭고한 믿음이 함께 불어넣어진 것이지.
어떤가. 무려 5천 2백만 자가 넘는 글자를 목판에 일일이 새겨 넣었을 때의 심정이. 느껴지는가.
지금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하지만 그때 외부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우리 민족의 혼을 하나로 이어주던 그 염원을 헤아리는 사람은 없는 것 같더군.
그저 팔만대장경과 함께 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에 답이 없는 메아리만 고요하게 울릴 뿐이지.
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언제나 이야기가 피어난다. 어느 나라든 강은 중요한 물류 운송의 수단이 되었고 강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그 당시 수도인 한양으로 몰려들며 강 주변 나루에 상권을 만들게 된다.
마포나루는 조선의 시전 상인들이 물자를 교역하는 중요수단이었으며 조선의 모든 장사꾼들이 한번쯤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공간이 되었다.
“주모, 여기 술상하나.”
“누군가 했더니 김씨구먼, 외상은 안 돼요. 오늘은 내 돈 받을 것이니 그리 아시오.”
“어허, 왜 그러오? 내 오늘은 돈 내고 먹는 것이니 걱정 말고 상이나 빨리 가져오란 말이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오늘은 장사가 잘 되었나 보지요?”
“그럼, 잘 되고말고. 모처럼 장사수완이 좋았지. 암.”
당시 마포나루에는 여러 장사꾼들이 모여 상권을 이루었지만 그 중에서도 새우젓이 제일이었다. 당시 서울사람들은 겨울이 되기 전 김장을 담그기 위한 새우젓을 사러 모여들었고 마포나루에서 새우젓을 사가면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마포나루에는 새우젓의 짙은 향이 머물곤 했다.
김씨가 마포나루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도 이 새우젓 때문이었다. 마포나루의 아지매들이라 하면 다들 김씨의 새우젓을 맛보고 사가기 위해 십리 밖까지 줄을 선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김씨의 장사수완은 날로 좋아졌다.
“어이, 자네 김씨 소식 들었는가?”
“들었지, 들었고말고. 그래서 사람팔자 한치 앞도 모르는 거라 그러지 않나. 김씨가 저리 성공할 줄 알았겠어?”
“누가 아니래? 비싼 비단 저고리 팔다 내 신세 다 가겠소. 나도 김씨한테 장사나 좀 배워볼까?”
“그러면 뭐하누, 아직 상투를 못 틀었는데.”
“아, 조선팔도 김씨 새우젓 장사 소식이 파다한데, 이제 예쁜 색시 고르는 일만 남았지 뭐요.”
주막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김씨의 소식은 이리저리 퍼져갔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처럼 김씨에게 시집을 오겠다는 처자들은 많았지만 김씨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선뜻 어떤 아낙과 혼인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돌지는 않았다. 지나가는 이야기로는 마포나루에서 크게 어물전을 하는 거상의 여동생을 흠모하고 있고 그 처자도 김씨가 맘에 드는 모양이나 어물전 오씨가 김씨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만 들릴 뿐이었다.
김씨도 마포나루에서 크게 자리 잡은 사람이었지만 어물전 오씨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오씨는 마포나루 상인 중 제일가는 장사꾼으로 마포나루 상인들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선박도 여러척이었고 그의 말에 마포나루 상권이 들썩일 정도였다. 오씨도 김씨의 장사를 눈여겨보고 있었을 터, 침착하고 진중한 성격의 오씨는 아직 김씨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사실 오씨가 김씨를 탐탁지 않아 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씨가 새우젓 장사를 하면서 상권을 확보하자 점점 오씨가 판매하는 어물전과 겹치는 품목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오씨에게는 단골손님들이 많았기에 큰 피해가 있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김씨는 무슨 수를 내어야 했다. 언제까지 오씨의 허락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씨는 며칠 뒤 마포나루에서 큰 잔치가 열릴 것을 알고 그 때를 노리기로 했다. 오씨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마을의 큰 잔치가 열리고 마포나루에 모인 사람들은 거의 평소 때보다 곱절이나 많았다. 오늘 장사만 잘 하면 크게 한 몫 챙길 수 있었기 때문에 상인들도 좀처럼 바삐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영문인지 시간이 지나도 김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오씨도 내심 김씨가 신경 쓰였는지 자꾸만 김씨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날이 점차 어두워지고 상인들이 한두 명씩 짐을 꾸리고 있을 때 김씨의 모습이 나타났다. 주막에서 속편하게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다. 오씨가 김씨의 옆에 털썩 앉았다.
“아니, 김씨 자네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모르고 여기 이렇게 태평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가?”
“어물전 장사는 잘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나야 늘 그렇지만 자네는 단골도 만들고 하기 좋은 날인데. 장사꾼 마음이 글러먹은 건가?”
“저를 기다리고 계셨소? 오늘 저는 돈보다 더 귀한 걸 얻었지요. 바로 형님의 장사를 눈여겨보았지요. 어떻게 장사를 하나, 단골은 누구인가.”
“아니 자네. 허허.”
그렇게 오씨는 김씨를 허락하게 되고 마포나루에는 크게 두 개의 상권으로 나뉘게 된다. 아직도 마포나루에는 김씨의 새우젓 냄새가 희미하게 풍긴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여자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남자는 한참을 그 시간에 멈춰있었다. 낮인지 밤인지 문 밖에 신문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술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술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남자가 마시는 것이 술인지 눈물인지 모를 만큼 슬픔을 잊기 위해 슬픔을 들이켰다. 얼마나 그 시간에 갇혀 있었던 건지 옆집 사는 사람이 쌓여있는 신문과 상해버린 우유들을 보고 초인종을 몇 번 누르고 간 적이 있다. 인기척을 낼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남자는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몇 차례 경비 아저씨와 옆집 아주머니가 남자의 집 앞을 다녀간 뒤로 남자의 근황을 염려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가 여자를 처음 본 것은 병원에서였다. 대학병원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동네에서는 꽤 큰 크기의 종합병원에 근무하던 여자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오토바이를 타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무릎을 크게 다친 남자는 여자가 근무하는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실로 꿰맨 무릎에 소독을 하러 여자가 남자의 병실에 찾아왔다. 하얀 얼굴이라 그런지 단정한 간호사복이 잘 어울리는 여자는 순백의 천사처럼 보였다. 남자의 상처를 소독할 때면 마치 엄마처럼 상처부위를 호호 불어가며 소독약을 발랐다.
남자의 생활은 꽤 거칠었다. 어울리는 사람들은 험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생활도 거의 해가 저문 밤에서야 시작되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것도 여자였다.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서 거칠었던 생활도 점차 안정을 찾고 특별할 것 없이 잠잠하게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여자를 병원에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매일같이 여자를 데려다 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날따라 꺼림칙한 느낌에 잠깐 짬을 내어 여자를 데려다 주었던 것이다.
악. 짧은 비명과 함께 여자가 붉은 피를 쏟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종종 어지럽다고 했었는데 그저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여긴 여자의 몸이 병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의 곁을 떠났다.
실로 오랜만에 남자의 집 앞에 인기척이 들렸다. 남자는 여전히 문 밖을 신경 쓰지 않았으나 강제적으로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집 주인의 허락도 없이 현관문은 스르륵하고 열렸다.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야? 연락을 해도 답이 없더니만.”
남자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친구의 방문 아니 무단침입이었다. 남자는 그 와중에 원래 집 주인 허락 없이 문 열어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가. 너랑 실랑이 할 힘도 없어.”
“어후, 술 냄새.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건데. 뭐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야. 밥이라도 챙겨먹어야지 이 술병들 좀 봐.”
“만사 다 귀찮으니까 가라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알아서 하긴, 너 이렇게 사는 거 하늘에서 보고 좋아 할 것 같냐? 이젠 충분해 너도 돌아와야지.”
남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소리도 채 새어나오지 않은 울음이었다. 아주 작은 흐느낌으로 남자는 슬픔을 삼켰다. 남자는 여자가 이렇게 아팠던 것이 모두 다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남자의 슬픔을 바라보던 친구는 남자를 억지로 차에 태웠다. 그리고는 회산백련지에 남자를 데려다 놓았다.
“자. 이제 네 모든 슬픔 여기다 다 남기고 가. 그분도 편하게 보내주고. 이젠 편하게 보내줄 때 된 것 같다.”
하얗게 핀 연꽃이 꼭 그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담담한 눈빛으로 넓게 펼쳐진 백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조금씩 놓았다.
넓게 펼쳐진 저수지에 유독 하얗게 핀 백련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제는 놓아 보겠다고. 희고 아름다웠던 당신을 잊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겠다며.
할머니는 자주 혼자 계셨다. 언제부턴가는 가족들이 할머니를 보러오는 것도 귀찮은 눈치였다. 할머니는 엄마가 오징어채다 콩자반이다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와도 늘 김치 하나만 두고 드셨다. 그런데도 밥은 한 가득 꾹꾹 눌러 담아 드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엄마는 바리바리 싸온 밑반찬과 함께 잔소리도 한 아름 늘어놓았다.
“엄마, 정말 이렇게 살 거야? 언제까지? 엄마도 아빠 따라 가려고 그래?”
“그런 말 마라. 이렇게 사는 게 어떻다고. 늙으면 다 그런 거지. 무슨 유난은. 이제 이런 것도 가져오지 마.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없으니까.”
“김치, 지겹지도 않아? 그것도 폭삭 쉬어터진거. 만두도 못해먹겠다.”
할머니는 엄마의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 조용히 보청기를 내려놓으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분풀이랄까 아니면 그것이 이 두 모녀만의 대화 방법이었을지는 모른다. 그저 반찬만 두고 바로 돌아선다면 독거노인 돌보러 오는 사회복지사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한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이렇게 혼자 계시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부터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혼자 계시는 것이 안타까워 모셔간다고 우겼으나 할머니의 고집은 누구도 말릴 수 없이 단호했다. 엄마가 할머니께 반찬을 가져다줄 때면 내가 항상 뒤따랐다. 할머니 혼자 계신 집에 발을 들일 때면 항상 퀴퀴하면서도 짠 냄새가 났다. 할머니 고유의 살비듬 냄새가 벽지와 가구, 침구에 배어있는 듯했다. 할머니 댁에 갈 때면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킁킁거렸다. 예전에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에는 분명 깔끔한 냄새가 났었다고 기억한다.
“엄마, 할머니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
“그런 말 마. 가꾸지 않아서 그래. 혼자 살면 원래 더 그런 거야.”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서일까. 할머니의 방에서는 짜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마치 새우젓과 같은 냄새랄까. 할머니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에서는 항상 할머니 냄새가 났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배추와 파 고추 등 김장에 필요한 재료들을 샀다. 할머니가 다 쉬어터진 김치만 두고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거실 한가득 김치 재료들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한숨을 푹푹 쉬었으나 할머니를 다시금 찾아 뵐 이유가 생겼음에 기분이 들떠보였다.
김장 재료들 사이로 새우젓이 눈에 들었다. 할머니 방이 떠올랐다. 나중에 우리 엄마 방에서도 이런 냄새가 난다면 어떨까?
보자기로 한 보따리를 들고 할머니 댁을 다시 찾았다. 할머니는 반가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속으로는 반가우신 모양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저번에 엄마가 가져다 준 반찬이 거의 그대로였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을 한 냉장고는 늠름하게 문을 닫았고 엄마의 잔소리는 다시금 시작되었다.
“엄마, 내가 가져다 준 반찬 하나도 안 먹었어?”
“먹었어.”
“뭘 먹어. 그대론데. 정말 속상하게. 또 김치 하나만 두고 먹었어? 휴. 안 그래도 김치 새로 담가왔어,”
“뭘. 또 새로 만들었어. 놔두라니까.”
할머니가 오늘은 보청기를 빼놓지 않는다. 엄마와의 대화가 이제는 귀찮지는 않은가 보다. 할머니의 방에 들어서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셔보았다. 할머니 냄새가 희미하게 묻어있었다.
할머니의 흔적이 묻은 곳에서는 짜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싸우는 소리에 낮잠에서 깨었다.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다가 쨍그랑 하는 소리에 눈이 번뜩하고 뜨인 것이다. 할아버지께선 또 아버지가 만드신 도자기를 던지신 모양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싸우고 있는 방 문 앞에서 귀를 쫑긋하고 세우며 말들을 엿듣고 있는데 엄마가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고는 방으로 들어가라고 버럭 소리치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요 근래 종종 싸우셨다. 그 발단은 아버지의 뜬금없는 중대발표로부터였다. 오래 다니시던 회사를 그만 두시고 도자기를 만들고 싶으시다는 것이었다. 사실 할아버지께서는 오래도록 도자기를 만드시던 도예장인이시다. 그래서 아마 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도자기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자라 오래도록 그 꿈을 키워 오신 듯했다. 그렇지만 워낙 엄한 할아버지 앞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쉬이 꺼내지 못한 채 지난 세월을 지나오신 듯했다.
“그만 두라고 하지 않았어? 도자기는 무슨 놈의 도자기야 네가. 다 때려 부수기 전에 그만 두어라.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네 어깨에 딸린 처자식은 어쩌고 너 혼자 여기 틀어박혀서 흙이나 만지작거리고 있겠냐는 거냔 말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좀처럼 양 손을 어쩌지 못하고 숨만 씩씩 내뱉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종종 할아버지 작업실에 계신 적을 본 적은 있었는데 이렇게 밤낮없이 할아버지 작업실에만 계신 적은 없었다. 아버지가 도자기를 만들어내면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망치로 깨부쉈다. 그래도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대들지 않고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마당 한켠에 쌓아두셨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잘 드시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어떻게 된 일인지 술이 잔뜩 취하셔서는 작업실로 들어가셨다. 그러더니 도자기들을 손수 다 깨부수며 서럽게 우셨다. 아버지께서 눈물을 보이시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셨다. 어깨를 들썩이시며 아끼시던 도자기를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어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달려가셨는데 한동안 아무도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다. 그저 한 발자국 떨어져 아버지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듣고 계시죠, 아버지. 저요 아버지처럼 멋진 옹기장이가 되고 싶었다고요. 이렇게 흙 만지고 있는 것도 좋고 행복한데, 이젠 저도 제가 하고 싶은 것 해도 되지 않습니까? 예? 아버지, 대답 좀 해보세요. 예?”
취중진담이란 걸 눈앞에서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버지는 가슴 깊이 묵혔던 말들을 할아버지 앞에 고스란히 뱉어내고 있었다. 아버지 모습을 보니 어쩐지 그렇게 커 보이시던 아버지가 한없이 작아지신 것 같아 마음이 저릿해왔다. 할아버지는 멀찌감치 에서 뒷짐을 지고 계시다가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아버지가 깬 도자기 파편들을 주우셨다. 그리고는 한동안 식어버린 가마 앞에 서계셨다.
다음 날 아버지는 머리를 지그시 누르시곤 식탁에 앉으셨는데 할아버지께서는 아침도 거르신 채 아침 일찍 외출을 하셨다고했다. 아버지는 간밤의 일이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와 대면하는 것이 자신이 없던 차였다가 도리어 잘 된 것 같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 할아버지께서 돌아오셨는데 한 손에는 구하기 어렵다는 백토와 도예도구들을 사들고 오셨다. 그리고는 무심한 듯 마루에 내려놓으시고 아버지께 나갈 채비를 하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점퍼를 챙겨들고 나갈 준비를 마치셨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지도 않으셨다. 그저 할아버지 발길을 뒤따라 갈 뿐이었다. 한참을 걷고 또 걷다보니 곤지암 도자기공원에 다다랐다. 할아버지께서는 간밤에 있었던 일도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등의 말씀도 없으셨다. 그저 도자기 공원에 놓인 여러 도자기들과 도예 작품들을 세심한 눈으로 바라보시기만 하셨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뒤에서 할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감상하였다. 그리고 어느덧 오래던 가마 앞에 다다르셨다. 전통가마라고 쓰인 그곳에서는 언제 불을 떼었는지도 모를 오래된 가마 하나가 있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할아버지께서 입술을 떼셨다.
“그게 그리 하고 싶더냐. 그리 하고 싶어. 하고 싶으면 해야지 어찌 하겠어.”
“아버지.”
“온 신경을 이 투박한 손끝에 실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빚는 다고 생각해야지.”
집으로 돌아오신 후 할아버지는 식었던 가마에 다시금 불을 지피셨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 앞에 서계셨다. 아버지가 작업실에서 나오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