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와 함께 달린 배다리막걸리
한반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두루 마신 술을 꼽는다면 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다. 과일주보다는 곡주를 담그는 빈도수가 많았기에 쌀 외에도 온갖 곡식으로 막걸리를 빚었고, 그중에서도 양이 많이 나오는 막걸리를 자주 먹었다. 용수로 술을 거르거나 증류식으로 한층 맑은 술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만든 술은 막걸리보다 그 양이 훨씬 적어 부유한 사람들이나 먹게 마련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막걸리는 지역마다 제각기 다른 개성을 자랑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쌀과 물, 밀이 숙성되는 맛
막걸리 맛은 지역마다 다양하다. 좁쌀이 많이 나던 곳에서는 쌀 대신 좁쌀로 막걸리를 만들기도 하고, 밤이 많이 나는 곳에서는 고소한 맛이 일품인 밤 막걸리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특성은 고양시에서 만들어진 배다리막걸리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 한강 하류의 넓은 평야는 농사에 적합했고 이곳에서 나오던 쌀은 차지고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이 쌀을 이용해 막걸리를 만들던 양조장도 여러 군데였다. 이 중 능곡 양조장은 현재 배다리 술도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양조장들이 강제로 통폐합될 때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며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 그 역사가 보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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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막걸리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술은 총 세 가지. 배다리생막걸리와 배다리프리미엄, 그리고 천년초막걸리다. 배다리프리미엄과 천년초막걸리는 고양시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쌀을 사용한 고급 막걸리를 표방한다. 반면 배다리생막걸리는 가격으로나 맛으로나 두 술보다 대중적이다. 밀로 만든 누룩과 국내산 쌀, 천연암반수와 약간의 감미료로 만들어지는 술은 탄산이 풍부해 청량감이 강하면서도, 달고 시고 떫은 맛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탄산이 풍부한 이유는 배다리생막걸리의 효모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보통 가게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막걸리들은 멸균 막걸리인 경우가 많다. 효모가 계속 살아 발효를 하게 되면 술의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어렵고,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탄산이 마개를 헐겁게 해 술이 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배다리생막걸리는 다시금 눈길을 끄는 생막걸리다. 효모의 숙성에 따라 술맛이 점차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몸에 좋은 미량원소들이 발생하기도 하니 건강에도 좋다. 하루하루 맛이 달라지는 술이지만, 술도가에서는 출고된 후 약 3일가량 숙성되었을 때의 맛을 가장 추천한다.
배다리막걸리, 현대사의 질곡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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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술도가가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겪었던 역사는 결코 소소하지 않다. 양조장들의 통폐합이나 1960년대 시행된 쌀 막걸리 금지 등도 전통 주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일이다. 그러나 배다리막걸리의 역사는 특이하게도 한국 정치계 쪽으로 연결이 된다. 바로 밀가루 막걸리를 장려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기던 술이 배다리막걸리이기 때문이다.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양시의 한 주막에서 처음으로 배다리막걸리를 마신 뒤 근 14년간 청와대 비서실로 조달했다. 당시 막걸리는 쌀로 담그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청와대로 보내는 막걸리에는 몰래 쌀을 사용했다는 에피소드가 그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한편 이 배다리막걸리는 한때 통일막걸리라는 거창한 별명이 붙었던 적도 있다. 1999년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마셨다는 막걸리를 요청하면서, 2000년에 현대 측을 통해 북한으로 막걸리를 보낸 것. 남북정상회담 때는 만찬용 술로 쓰일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총 3번, 60말의 막걸리를 보냈던 것에서 당시 온화한 기류가 감돌았던 남북한의 관계를 생각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