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느끼는 농익은 가야금 선율
- 충청북도 충주시 -
거문고, 향비파와 더불어 3현(絃)으로 일컬어지는 단아하고 해맑은 가야금 소리가 있기에 탄금대입니다. 악성 우륵(于勒)의 넋이 가야금 열두 줄에 서려 있기에 탄금대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선인들이 창조하여 가꾸어온 우리의 소리는 현(絃)마다에서 신묘한 소리로 당대 사람들을 감동시켰을 것이 자명합니다. 하지만 선인들의 애환을 가락에 얹은 전통적 운율 위에 또 하나의 구슬픈 소리는 가슴으로만 들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명암이 교차하는 농익은 가야금 선율을 가슴으로 느껴라!
우륵이 가야금을 타서 얻은 이름 탄금대는 충주에서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탄금대에 선 우륵이 되어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느껴보자.
“무심히 흐르는 달천(達川)이 남한강과 조우(遭遇)하는 구릉지대에 위치한 이곳 탄금대는 보게나. 빼어난 주변 풍광이 수려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나직하여 편안한 숲에서는 가득 생기 머금고 달려오는 계절이 신록을 준비하는 듯 햇살을 회유하고 있어요.”
숲 향기에 이끌려 오솔길을 돌아나가자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 펼쳐지고 강을 조망하기 좋은 벼랑 끝 한 지점에 오랜 역사의 갈피를 접고 선 비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지은 탄금대비로구먼. 비문에는 삶의 애환을 올올이 가락으로 승화시킨 우륵에 대한 예찬을 적었구나.”
“이밖에도 병자호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임경업 장군 등을 칭송하고 있지만, 같은 반열에서 패장 신립(申砬:1546~1592) 장군에 대한 음각은 다소 옹색한 느낌을 주네요.”
우리 고유의 악기 가야금은 오동나무 긴 널에다 명주실을 곱게 꼬아 열두 줄을 매고, 줄마다에는 기러기발을 세워 만든다. 그 소리를 들어보자.
“가야금은 오른손으로 줄을 퉁기면서 왼손으로는 기러기발의 바깥쪽을 눌렀다 놓았다 하면서 연주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고풍스럽고 우아하지. 우리 선인들은 가야금을 벗하여 때로는 연군지정(戀君之情)의 충의를, 때로는 임과의 애달픈 이별을 담아내기도 한단다.”
“때로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찬탄을 소박하고 넉넉하게 담아내고 있음이 느껴져요.”
우륵은 원래 가야국 사람으로 신라에 귀화한 후 왕의 배려로 충주에 머물며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고 살았다. 이맘때 우륵이 만든 가야금의 12줄에 담긴 의미는 뭘까?
“우륵은 우리나라 12월의 율(律)을 상징하여 12줄 현악기 가야금을 만들었고, 상하 가야(伽倻) 등 12곡의 노래를 지어 ‘가얏고’라 했다지.” “가히 탄금대는 우리 가락과 노래, 춤이 어우러진 진정한 풍류의 진원지라 하겠군요.”
“그래서 탄금대를 알면 우리 가락에 충분히 자긍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게야.”
이곳에 풍류만 있었던 건 아니다. 벼랑 끝 바위에 내려서면 임진왜란 당시 최후의 격전 끝에 전멸한 신립 장군이 장렬하게 투신한 열두대에 닿는다. 어떤 느낌이 전해질까?
“애간장을 도려내는 선율을 환청이 들리는 듯하구나. 유장하게 흐르는 탄천의 물줄기가 산기슭을 떠받치며 굽이도는 낭떠러지에서 열두 대가 얼룩진 역사의 한 자락이 바위 끝에 매달린 듯 애처롭기까지 하구나.”
“비극적인 한을 아직까지 아우르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유난히 물색이 짙푸른 듯해요.”
열두 대 낭떠러지 아래 충주호 물길을 따라 계속 산길을 걷다 보니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신립 장군의 순절비가 앞길을 막아선다. 그의 죽음은 어떻게 기록됐을까?
“비문에는 임진왜란 때 장군의 행적이 비교적 객관적 문장으로 나열되어 있어. 이중 ‘중과부적(衆寡不敵)’과 ‘고군분투(孤軍奮鬪)’라는 성어가 공감이 가는구나.”
“다행히 신립 장군은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나라에서 충장공(充壯公)이라는 시호까지 내려 그의 장렬한 죽음을 애도했군요.”
물길 따라 가까이 다가온 용섬에는 한적한 오후의 평화가 드넓게 자리를 펼치고, 단청으로 채색된 탄금정(彈琴亭) 처마로 미풍이 스치며 풋풋한 풀냄새가 기분 좋다.
“탄금정에 오르니 솔가지 사이로 살며시 내비치는 물색이 솔잎과 초록색으로 한데 어우러져 싱그럽기 그지없네요.”
“달천의 도도한 물줄기가 저 아래 남한강의 또 다른 물줄기를 만나 하나가 되면서 더욱 당당해지는 모습이 마치 우리의 가야금 소리의 멋을 대변해주는 듯하구나.”
미세한 진동음의 환청이 있어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오동나무 고목의 천년 숨결을 머금은 가야금 곡조가 잔물결처럼 파랑으로 번진다. 잠시 그 소리를 따라가 보자.
“실개울처럼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환청과 같은 진동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가야국을 그리워하는 우륵의 탄식일까요?”
“바로 계고가 엮어내는 가야금의 고뇌어린 회한이 되고, 법지가 부르는 애조 어린 그리움의 노래가 되고, 만덕이 추는 번뇌어린 소망의 춤사위가 내는 소리로도 들릴 수 있겠지.”
탄금대에 가면 계절이 아무리 앞으로 내달아도 결국 춘하추동의 예정된 사계절을 되새김질하는 일에 불과하듯 역사도 같은 여정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양지 바른 길목에 선 장군의 순절비는 더없이 초라하고 작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회한은 이쯤에서 걷어내고 청명한 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춤을 추다 바위에 부서지는 물결의 끝자락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아보세요. 지금 여러분은 풍류에 찬 우륵의 가야금 소리를 듣고 있나요?
영화 속 주인공처럼
- 경기도 남양주시 -
공사장(?) 같은 이곳에서 상상력의 마법이 이루어집니다. 수많은 영화들의 셋트장을 지었다 부쉈다 하는 이곳은 남양주 종합 촬영소입니다. <공동 경비 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등의 쟁쟁한 영화들에 시설과 장비, 기술을 제공한 이 곳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외국인들은 물론, 영화학도를 꿈꾸는 사람과 영화를 즐기는 사람까지 다양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러야 할 이곳에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남양주 종합 촬영소에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보라!’
남양주 종합 촬영소는 약 40만 평의 부지에 다양한 시설을 갖춘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 제작 시설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이곳에 판문점 세트까지 있다는 게 사실이야? 영화는 물론이고 드라마 촬영까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던데?”
“시나리오 한 권만 있으면 촬영부터 편집까지 모두 해 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야. 카메라, 조명, 의상, 소품까지!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이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판문점 세트에는 판문각, 팔각정, 회담장 등이 판문점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다. 세밀한 고증작업을 거쳐 실제의 80% 규모로 만들어진 이곳에서 이병헌과 송강호가 되어보라!
“저 사람 모양 입간판, 어디서 많이 본 것인데? 아, 영화 <공동 경비 구역 JSA> 속의 바로 그 장면이잖아! 바람에 날린 관광객의 모자를 주워주고 웃는 송강호와 사진사를 제지하는 이병헌의 모습이야.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포토 존이 바로 여기라고 들었어. 우리도 어서 가 보자!”
민속마을 세트장은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을 촬영한 곳으로 19세기 말의 거리가 재현되어 있다. 걷기만 하면 재미없으니, 신나게 달리며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볼까?
“드라마 <추노>, <다모>, <황진이> 등을 촬영한 곳도 바로 이 민속마을 세트장이지? 초가 담장 사이로 금방이라도 추격전이 벌어질 것만 같은데? 가게에는 버섯이랑 오이까지 있어!”
“에헴, 양반의 돈주머니에 손을 댄 것이 바로 네놈이렷다? 게 섰거라, 이놈!” “아이구, 나으리! 한 번만 봐 주십쇼! 집에 어린애와 노모가 있습니다요.”
운당은 한 내관이 순조로부터 목재를 하사받아 지은 건물을 이전하여 복원한 것으로, 본채와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당, 문간채, 사주문, 일각문 등 전형적 양반집의 모습이다.
“저기 붙어 있는 포스터들을 좀 봐! <왕의 남자>, <스캔들>에 <미인도>까지! 모두 알고 있는 영화들인데? 본채 앞에는 죄인을 문초하기 위한 의자와 화로까지 있어!”
“아까 하던 놀이를 계속해 볼까? 이 도둑놈, 당장 주머니를 내 놓아라!” “하하, 영화 따라 하기에 아주 푹 빠져버렸구나?”
영상 지원관으로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마치 벽화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어, 저기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쪽은 뉴욕의 거리 같고, 저쪽은 동화 속 세상 같네? 음, 난 뉴요커 포즈를 한 번 취해봐야겠어. 외교관 같은 느낌이 나게 찍어 줘.”
“나도, 나도! 난 저 그림이 마음에 들어. 저기,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 말이야! 각도를 잘 맞춰서 찍어야 해. 진짜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영상 지원관 1층에서는 시대상이 엿보이는 의상과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래된 장롱과 가로등, 책, 소파, 전화기까지 옛날 물건들이 가득한 이곳은 마치 보물창고 같다.
“우와, 어렸을 때 보았던 물건들이 가득해.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물건들도 있는 걸? 옛날 교복들을 좀 봐! 지금이랑은 많이 다른 모습인데?”
“난 저게 마음에 들어. 영화인들의 얼굴로 만든 태극기 말이야. 우리 영화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 같지 않니? 자세히 보면 우리가 아는 배우들도 많아.”
2층에서는 영화인 명예의 전당과 법정 세트, 미니어처 체험 전시관, 영상 체험관 등이 제공된다. 그 중에서도 영상 체험관에서는 크로마키 기법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데?
“저 파란 배경, 익숙한데? 이전에 영화에 대한 책에서 본 적이 있어. 아마 저 파란 부분에 영화의 배경이 합성되는 원리였는데, 진짜일까? 네가 한 번 올라가 봐.”
“어? 진짜야! 이것 좀 봐! 내가 계곡을 건너고 암벽을 오르는 모습이 그대로 합성되고 있어! 내 모습이 바로 영상으로 출력되니 정말 실감나는데?”
국산 3D 애니메이션 <원더풀데이즈>의 미니어처 체험 전시관에는 비행기 격납고와 오토바이 공작소 등이 만들어져 있으니 애니메이션을 미리 보고 가는 것이 포인트.
“영화 속에 나오는 미래형 오토바이야!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모습인데?”
“세트장이 아니라 미래 도시를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저 멀리서 내 모습을 한 번 찍어 봐. 만화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나올 것 같은데?” “정말이야! 우리 오늘 대체 몇 개의 영화에 출연 해 본 거지?”
스크린으로 보는 영화도 재미있지만, 영화가 스크린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이곳, 남양주 종합 촬영소의 모습도 정말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와 만화 속의 바로 그곳을 거닐며 사진을 찍어보고, 전설적인 영화인들의 활약상을 되짚어보고, 칸 영화제 수상작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살펴보는 과정들을 통해 영화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영화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만큼, 영화 감상도 보다 능동적으로 심도 있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역사와 과거의 발자취를 걷다
- 경상북도 문경시 -
새도 쉬어간다는 뜻의 ‘문경새재’. 그 문경새재가 있는 곳이 바로 경북 문경입니다. 문경은 내륙 지역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따기 체험, 레일바이크 등 최근 다양한 관광 상품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문경이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문경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역사적 가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내륙의 산세가 뽐내는 문경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문경에 얽힌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입니다.
고개가 험준해서 날아가는 새들도 쉬었다 간다 해 ‘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문경 새재를 기념하는 표지석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마침표 역할을 한다.
“전국에 고개가 이곳뿐인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까?”
“그건 아마 문경새재만이 가진 이야기와 느낌 때문이 아닐까? 그 옛날 조상들이 걸었던 것처럼 여전히 호젓하고, 또한 가파르지만 사색에 잠기게 하는 게 문경새재의 매력인 것 같아.”
수많은 역사 유적지를 가진 문경새재의 산길을 걷다보면, 선조들의 숨결과 함께 자연, 문화, 역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역시 자연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민족이라 할까.
“문경새재 과거길은 옛날 남도 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에 갈 때 거쳐갔던 길이라 해서 과거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대.”
“그렇구나.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출세를 꿈꾸는 마음은 매한가지이겠지? 그 때를 상상하며 걸으니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져.”
그 옛날 선조들이 걸었을 때는 지금보다 더했겠지만, 지금도 문경새재를 오르다 보면 숨이 차다. 걷는 이의 수고로움을 숲길의 솔방울 냄새가 달래준다.
“저기 벤치가 있네. 옛날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은 바위에 앉아서 쉬었겠지?”
“그러게. 한적한 숲길에 현대식 벤치가 있으니 편히 쉴 수 있어 좋은 한편, 옛날 우리 조상들은 길을 가다 쉬고 싶으며 어떻게 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솔방울 냄새가 은은해서 올라가는 동안 힘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것 같아.”
문경새재를 걷다보면 한시가 적힌 바위들의 군집을 마주하게 된다. 한시 비석을 보면 마치 조선시대 등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 한 착각에 빠진다.
“정말 가을은 가을인가 봐. 문경새재 숲길에도 낙엽이 한가득이네.”
“그러게. 문경새재는 한반도에서 중부 내륙에 위치해 있어서 기온이 따뜻한 것 같아. 그래서 늦가을에도 걷기 좋은 것 같아. 그리고 산 속에 한시가 적힌 바위가 있어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아.”
지금은 폐광이 된 문경 일대 탄광지대는 탄광박물관 등 관광상품으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레일바이크, 탄광 갱도 체험 등이 그 예이다.
“문경은 조선 시대의 역사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과거 산업화 시대의 영화를 누렸던 곳이기도 하구나.”
“그럼. 문경에 오면 탄광체험을 빼놓을 수 없지. 일반인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탄광 갱을 체험열차를 타고 들어갈 때의 짜릿함은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문경만의 매력이지.”
문경새재 숲길에는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이 깊으면 계곡도 깊듯, 문경새재 숲길 역시 숲길 사이로 난 개천을 마주할 수 있다.
“문경새재는 고갯길이라 나무와 바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그럼. 산이 높을수록 계곡도 깊다는 말 못 들어봤어? 문경새재 역시 높고 험준한 만큼 곳곳에 계곡과 개천을 볼 수 있어. 개천 따라 걷다보면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지 않니?”
문경이 문경새재로 유명하다고 해서 고갯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자로 뻗은 평지길도 있다. 가로수 사이로 곧게 뻗은 길은 산책하기 더없이 좋다.
“문경새재도 좋지만 평지는 없어? 조금 쉬엄쉬엄 걸을 수 있는 그런 길 말야.”
“있지. 문경에는 휴양림도 많아. 또 산길이라 해도 모두 경사지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니야. 잘 찾아보면 평지도 많고 특히 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걷다보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문경새재 숲길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소박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 누가 놓았는지 모를 개천 위의 외나무다리는 향토적이면서도 지나는 이의 웃음을 짓게 한다.
“문경은 내륙 관광지답게 오밀조밀 숨겨진 명소가 많은 것 같아.”
“그렇지. 그리고 꼭 명소가 아니더라도 지나다 보면 ‘앗’ 하고 감탄할 수 있는 곳도 많은 것 같아. 마치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소박한 외나무다리처럼 말야.”
경북 문경에는 문경새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경은 옛날 우리 선비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며, 또한 산업화가 활발히 진행되던 지난 시절의 영화가 아련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방문하는 것보다는, 역사를 알고 방문한다면 더욱 알찬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문경새재 숲길만이 주는 고적한 느낌에 심취한다면 문경을 방문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트래블아이>를 따라 문경에 놀러와 보지 않으실래요?
추억만땅 서해바다 로맨스
- 충청남도 보령시 -
별빛을 받아 오글거리기만 했던 밤바다를 연인과 함께 걸어보니 얼마나 따스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그래서 충남 보령의 대천해변을 연인과 꼭 한번은 찾나 봅니다. 동해는 봄기운이 덜할 것 같습니다. 또, 남해는 오가는 길이 지루해 자칫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따져보니 보령에는 해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고즈넉한 절터와 호수, 소박한 기차역, 로맨틱한 드라이브길까지…. 봄기운 찾아 나선 연인들에게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특별미션도 바로 그러합니다. ‘보령에서 우리만 아는 특별한 낭만을 찾아라!’
머드축제나 개장시즌이 아니라면 제법 한산한 대천해변이지만, 손 꼭 잡고 사랑 속삭이는 연인부터 모래사장을 거닐며 해변의 지난 과거를 반추하는 여행객들이 눈에 띤다.
“장쾌한 모래사장을 보고 있으니 먹먹한 가슴이 뻥 뚫릴 것만 같아.” “맞아요. 그리고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의 아날로그적인 이미지도 느껴져요!”
“그래도 우리 ‘나 잡아봐라’ 놀이는 하지 말자. 보는 사람들에게 자칫 민폐라고.” “어머! 난 이곳이 70년대 서해안 최대 해수욕장으로 첫손에 꼽혔단 얘기를 하려던 건데!”
성주사지는 묵직한 시간이 향기에 빠져 산책하기 딱 좋은 절터다. 고즈넉한 운치에 절터를 걷는 기분도 은근히 상쾌하지만 다양한 볼거리가 제법 흥미진진하다는데?
“하늘로 날아오를 듯 경쾌한 느낌의 앞마당 5층석탑이나 강건하고 옹골찬 기운을 가진 금당터 뒤쪽 삼층석탑과 비교해보면 이 석불입상은 참 우스꽝스럽게 생긴 것 같아요.”
“하하~ 정말이네. 특히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군. 조선시대 민초들이 세웠다는데, 이 석상은 과연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
성주사지에서 미산면 일대를 가다 보니 보령호가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곳으로 향해본다. 호수를 마주했다면 잠시 차를 세워볼까?
“그런데 제법 다니는 차도 드물어 한적하고 도로도 널찍하니 드라이브하기 정말 괜찮은 것 같아. 비록 호수변이지만 대천해변과는 또 다른 멋이 있는데? 여기서 잠시 차를 세워볼까?”
“호수 초입에서부터 풍경이 참 예뻐요. 미동 없는 호수를 보세요. 잔잔한 수면이 햇빛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어요.”
보령호를 지나 또 다른 해변을 만난다. 전남 진도와 함께 바다가 갈라지는 ‘신비의 바닷길’ 무창포해변이다. 이 신비의 바닷길이 연인들의 사랑을 이뤄준다는데, 직접 걸어보자.
“우리 말고도 젊은 연인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단지 사랑을 이뤄준다는 소문이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닌가 봐요. 그래서 프러포즈 명소가 된 거겠죠?”
“글쎄. 하지만 지금 우리 사랑도 모세의 기적처럼 완성되길 바라. 이 길 위에 있는 사람들 역시 적어도 우리와 같은 마음 아닐까?”
새벽같이 무창포를 찾은 사람들은 바다가 열리기 시작하자 환호성을 지르며 앞다퉈 바닷길로 뛰어든다. 모세의 기적으로 맛보는 즐거움 어떤 종류가 있을까?
“이 바닷길이 석대도까지 1.5km 정도 연결됐다니 지금 가면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겠다. 지금 한번 가볼래?”
“그래요! 근데 바닥에 소라랑 낙지를 거의 맨손으로도 잡겠어요. 가면서 틈틈이 잡아요.” “바닥에 부서진 조개껍질도 제법인데 운동화로 갈아 신는 게 좋겠구나.”
보령 진죽리에 자리한 작은 간이역 청소역. 캔커피라도 손에 쥐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 창을 통해 쏟아지는 볕을 쬐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제법 폼 나는 휴식이다.
“기차역 초록색 지붕에 빛바랜 매표창구, 곧게 뻗은 철길도 참 운치 있어요.”
“청소역이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 된 역사라지. 규모는 단출하지만 역사가 정말 예뻐 연인들이 데이트하러 다녀갈 만하겠다. 여기서 딱 5분만 더 머물다 가자. 지금 내 머리는 추억을 좇고, 몸은 기분 좋은 나른함에 좇고 있으니.”
보령 두 번째 드라이브코스는 무창포해수욕장 인근 607번 지방도로. 울창한 해송과 바다를 감상하며 달리는 맛이 일품이라는데, 비경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또 다르다고?
“용두해수욕장 동백관 주변에 저렇게 멋진 송림이 있을 줄이야! 감탄사가 절로 나지 않니?” “정말 그렇네요. 여기 남포방조제 초입에서 우리 잠깐 주차하고 바람 좀 쐐는 건 어때요?”
“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니?” “있죠! 예상대로 낙조가 시작됐어요. 해송과 어우러져 탁 트인 바다가 정말 끝내주네요.”
싱싱한 회감을 맛보는 건 보령시내 어디를 향하더라도 크게 고민거리가 아니다. 수산시장도 있고 인근에 축제가 열리고 있다면 더욱 좋다. 어디로 가볼까?
“대천항에서는 싱싱한 횟감을 살 수 있는 수산시장이 있는데 그쪽이 좋겠지?” “다시 대천항까지 가는 건 좀 무리 아닐까요? 남포방조제 중간에 위치한 죽도관광지에도 횟집들이 많아요.”
“참! 지금 무창포항 일원에서 ‘주꾸미 도다리 축제’가 한창이니 당장 그곳으로 가자!”
충남 보령은 계절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연출되는 곳으로 사시사철 발길 닿는 곳마다 많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로맨틱한 낭만이 더해진 주옥같은 코스가 있으니 이만한 데이트장소도 없습니다. 그래도 코스는 코스일 뿐. 장소나 그곳의 분위기가 사랑을 애틋하게는 할 수 있지만, 없던 사랑을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곳곳에 산재한 낭만거리를 발견해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을 개척해나가는 것도 결국 연인들의 몫입니다. 마음속 봄기운을 가득 머금고 달려간 보령에서 여러분은 지금 어떤 낭만을 만들고 있나요?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길
- 전라남도 장흥군 -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고 한다면 ‘잘 키운 재래시장 하나, 열 마트 안 부럽다’는 말도 가능하겠습니다. 정남진 장흥토요시장을 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지근거리에는 동학농민들이 호남지방에서 끝까지 버티다 장흥에서 최후나 다름없는 일전을 치렀던 석대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요시장만 둘러보고 올 일도 아닙니다. 성을 에워싸고 도는 예양강과 함께 어우르는 산 과 들 등 자연환경을 돌아 볼 수 있는 ‘천지인(天地人) 둘레길’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도 바로 그것입니다.
장흥군이 토요시장에 이어 야심차게 선보인 길 ‘천지인 둘레길’은 장흥읍사무소 뒤쪽 탐진강변 홍살문에서 시작된다.
“이제 흘러간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20년 전 재래시장 모습이 있다고 해서 장흥 토요시장을 보러 왔는데, 이 근방에 ‘천지인 둘레길’이 있다고?”
“맞아. 장흥읍성 터를 중심으로 탐진강 수변공원, 동학공원을 연결시켰어. 이 벽화를 따라 산길로 들어서면 바로 삐비정과 만난다는데,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하지 않아?”
장흥읍성은 능선을 따라 흙과 돌로 쌓은 포곡식 산성인데 일부 구간은 자연 그대로 낭떠러지를 성벽으로 활용해 아찔함도 느껴진다고.
“성곽을 걷는데 위험하지는 않을까?” “나무로 안전판을 이어 놓았잖아.”
“아! 동쪽과 남쪽, 북쪽에 성문이 있었는데, 어디로 간 거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제대로 잘 찾지 못하는 걸까?”
평지의 성곽과 달리 산길을 오르내리는 북문 쪽은 산길을 오르내리는 흙길이다. 이 길 위에서 꼭 해봄직한 옛 풍습이 있다는데?
“길을 걷다보니 정말 건강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니? 평지의 성곽과 달리 산길을 오르내리는 덕분일까?”
“글쎄. 하지만 이 길 위에서는 옛 풍습이 하나가 있어. 나를 따라해 봐. 자! 이렇게 돌을 머리에 이고 성 밟기를 하면 건강해진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한번 해봐.”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진녹색의 동백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일러준다. 급기야 발견한 돌로 쌓은 석성, 과연 어떤 이야기를 지니고 있을까?
“경사가 다시 가파르다 싶더니 이 길이 우리에게 장원봉을 보여주려고 했나보구나. 여기 지명 유래가 적혀 있어.”
“어디 보자. 지금의 경찰서 뒤편 마을이 장흥 위씨 마을이었다는군. 여기에 사는 위원개, 위문개 두 형제가 장원급제를 해서 장원봉이라고 했대. 두 사람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장원봉을 지나 동학전망대로 가는 길은 장흥읍내와 억불산을 보며 걷는다. 왼편으로 보이는 억불산의 자태를 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을 듯한데?
“장흥읍과 안양·용산면 경계에 우뚝 솟아 있는 저 봉우리 말이야. 다소곳한 며느리를 닮고, 산의 능선이 며느리의 치맛자락 같지 않아?”
“저게 바로 며느리바위야.” “그렇구나. 왠지 애달픈 이야기도 스미어 있을 것 같아.”
마삭줄이 지천인 봉우리에 놓인 며느리바위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마음씨 착한 며느리와 구두쇠 시아버지 이야기, 이는 가련한 동학농민의 사연과도 꼭 닮았는데.
“하루는 시아버지가 시주하러 온 스님을 내쫓았어. 이를 본 며느리가 대신 사과하며 시주를 했더니 그 스님이 ‘마을에 큰 홍수가 날 것이니 산으로 도망을 가되,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며느리에게 귀띔을 해줬대.”
“착한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애절한 비명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결국 돌아봤겠지?”
억불산의 자태를 보며 걷는데 길섶 여기저기에 며느리밥풀꽃이 피어 있다. 진분홍색의 꽃잎에 하얀 밥알을 품은 꽃이 애틋하기만 한데?
“천지인 둘레길에 며느리밥풀꽃이 정말 지천으로 피어 있구나. 여기에도 며느리의 슬픈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겠지?”
“며느리는 하나같이 착한데 시부모는 왜 그리 모질게 그려졌을까.” “요즘 시부모들의 반응이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야.”
장흥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동쪽 낮은 언덕의 동학전망대. 이곳에서 동학농민군이 최후까지 관군과 싸웠던 석대들녘을 조망해보자.
“호남지방에서 끝까지 버티다 최후나 다름없는 일전을 이곳에서 치렀을 테지.” “여기가 그런 곳이라고?”
“동학군이 1894년 공주싸움에서 지고 곧이어 전봉준도 붙잡혔지만 장흥에서만큼은 달랐다고. 장흥성을 함락하고 깃발을 꽂아 위세를 떨쳤던 현장이 저 석대야.”
천지인 둘레길을 걷다 보면 장흥읍성을 에워싸고 도는 예양강에서 역사를 만나기도 하고, 토성산과 함께 사계절 꽃이 피는 탐진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장흥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비교하는 재미도 느끼게 됩니다. 옛 추억과 즐길 거리가 많은 장흥토요시장을 경유하면서 남도의 맛과 전통시장의 멋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지역의 역사와 발전상을 한 눈에 살피며 걷는 이 길은 하늘과 땅,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가져다줍니다. 여러분은 이 길에서 어떤 조화로움을 느꼈나요?
가야의 전설을 깨우다
- 경상남도 김해시 -
경남 김해에는 가야유적지 위에 아름다운 꽃과 봄향기 가득한 ‘가야사 누리길’이 있습니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을 시작으로 국립김해박물관~연지공원~구지봉~수로왕비릉~동상재래시장~북문~수로왕릉 등 가야의 역사문화 유적지를 하나로 연결하는 이 길은 특히 봄이면 곳곳에 이팝나무, 은목서, 꽃사과, 조팝나무, 백철쭉, 비비추 등을 함께 보며 걸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가야시대 찬란했던 유적을 탐방하면서 봄을 만끽하는 당일치기 여행,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미션입니다.
수로왕릉역, 박물관역 등 이름만 봐도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한 김해 경전철역. 여기서 국립김해박물관이 곧바로 연결되기에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박물관 앞 광장에도 봄나들이객들이 굴렁쇠를 굴리며 뛰놀고 있어. 이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체험 프로그램의 하나인 것 같아.”
“내 생각도 그래. 그렇다면 우리도 본관 옆 가야누리관에서 직접 가야의 생활상을 체험한 후 본관에 전시된 가야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게 좋겠다.”
김해박물관 뒤편에 있는 100년이 넘은 벚꽃나무도 호젓한 볼거리다. 하지만 이곳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더 제대로 된 여유와 휴식이 가능한 연지공원을 만날 수 있다.
“아직 파릇파릇한 새순이 돋지 않은 탓에 푸른 잔디를 볼 수 없어 조금 아쉽군.”
“이제 막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는데 뭘 더 바라겠어. 겉옷을 벗어 던질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볕은 따습지?” “앗, 저기 좀 봐! 호수 내 설치된 분수가 가동되기 시작했어!”
국립김해시박물관과 함께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도 가야민족을 상징하는 여러 전시물을 구경할 수 있다. 김해박물관 바로 옆에 대성동고분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가야인의 생활상과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변화된 삶을 담고 있군. 가야에서 김해로의 변천사와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였어.”
“아직 끝이 아니야. 이 박물관에서도 매월 가야토기 만들기, 청동거울 만들기, 가야무사 활쏘기 등 가야인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열고 있대.”
김해박물관 뒤편으로는 작은 언덕이 하나 있다. 해발 200여m에 불과한 동산에 불과할 것 같지만 가야왕국 시조인 김수로왕 탄생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여기가 고대 국문학상 중요한 서사시인 ‘구지가(龜旨歌)’의 발상지라는 사실 알고 있니?” “그렇다면 여기가 알속에서 수로왕 등 6가야 시조왕들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깃든 구지봉?”
“맞아. 동네 뒷산처럼 보이는 이 작은 동산이 역사적으로 국문학적으로 ‘구지가’의 산실인 만큼 탄강 설화와 함께 김해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지.”
구지봉에서 내려오다 보면, 이역만리 길을 떠나 영원한 사랑의 결실을 맺고 김해 땅에서 왕비가 되어 영원한 사랑의 화신으로 잠든 김수로왕비릉 앞에 발길이 멈출 것이다.
“허황옥 공주가 잠들어 있는 곳이야. 서역 땅에서부터 공주의 신분으로 길을 떠나 멀고도 험한 길을 걷고 또 걸어 마침내 김수로왕을 만난 공주의 이야기는 아직도 심금을 울려.”
“맞아. 그녀의 이야기는 2000년 전의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 되었고 지금까지 산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영원히 기억되겠지.”
이 가야사 역사탐방 코스에는 재래시장도 포함되어 있어 다소 의문이 들 수 있다. 김해재래시장(동상동)과 가야문화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가야정찬, 허왕후 만찬, 수로왕 만찬 같은 궁중음식들을 팔고 있을까?”
“아니야. 이 시장의 몇 십년 전통 음식점들은 약40년 전통을 가진 김해고유의 탁주 김해수로막걸리나 칼국수 같이 철저히 서민 위주의 음식을 팔고 있지.” “그렇다면, 김해수로막걸리 맛 좀 보고 갈까?”
이번에는 분산성으로 가보자. 조선시대 김해와 부산을 왜적으로부터 지켜온 김해 읍성의 4대문 중 하나인 북문의 위풍당당한 자태를 발견하게 된다.
“높이 솟은 문루 아래로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둥글게 쌓아둔 옹성이 보여.”
“김해읍성 중 북문이로구나. 양쪽에 날개처럼 쌓인 체성까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어. 조선 세종 때부터 김해와 부산의 왜적방어에 큰 몫을 했다지.” “120년 만에 되살아난 김해읍성을 마주한 느낌은 어때?”
수로왕릉역 해반천 교량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은 김수로왕릉의 정문 납릉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상징적 의미가 담긴 걸까?
“이 납릉 문설주에도 두 마리 물고기가 있어!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글쎄, 어찌됐든 이 두 마리 물고기처럼 허왕후와 수로왕은 높지도 낮지도 않게 서로를 마주 바라보면서 영원한 사랑을 이루었을 거야. 그 교화가 백성을 다스리는데도 일조했겠지?”
‘가락의 동쪽’이란 뜻을 가진 낙동강, 그 하구에 자리 잡은 김해는 2000년 전 금관가야의 찬란한 문화가 꽃피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1990년 대성동고분군 발굴을 통해 가야가 가장 철을 잘 다룬 국가였음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또 김해 땅의 흙과 낙동강의 물이 만나 이뤄낸 가야토기의 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조선시대 민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걷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가야의 전설이 깨어나는 가야사 누리길, 여러분은 걸어보셨나요?
마비정 벽화 마을의 그림 속을 걷다
- 대구광역시 달성군 -
대구 달성군 마비정 벽화마을은 색다른 벽화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비정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들은 어디서나 볼 법 한 날개벽화 라거나, 해학적인 그림이 가득한 다른 곳의 그림들과는 다른 정서로 가득합니다. 그저 예쁘고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름 벽화마을. 하지만 이곳에 가득한 정감어린 향토적 그림들은 벽화마을에 대한 또 다른 감성을 불러일으켜줍니다.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마음 속 벽에 그림을 그리고 돌아오라!’입니다.
옛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말을 불쌍히 여겨 마을 사람들이 ‘마비정’ 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그 말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 정말 외진 시골마을이 있다니, 어쩐지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에요. 게다가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바위들이 정말 멋져요!”
“거북바위와 남근갓바위를 말하는구나! 저 바위를 향해서 힘껏 달려가는 말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구나. 마비정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알고있지?”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돌배나무와 느티나무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비정의 연리목 주변으로 풍기는 달콤한 향기가 풍기는 듯 하다.
“꽃이 잔뜩 피어있는 길을 지나왔는데, 마을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연리목이 있네요. 꼭 결혼식장에 온 듯한 기분이에요.”
“그래, 게다가 마을 앞에 핀 저 꽃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고 하니, 이 연리목들을 축복해주는 기분이 드는구나. 참 축복받은 나무들인 것 같아.”
마비정의 문지기인 정승 그림을 지나 걸어가면 담장 너머로 내다보는 오누이를 만날 수 있다. 어찌나 생생한지 어른들 계시니? 하고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마비정 마을이 대표 말썽꾸러기들이 분명해요. 오빠를 따라서 배시시 웃고 있는 여동생의 표정이 정말 귀여워요.”
“담장에 매달린 아이들의 붉게 물든 볼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벽돌도 아닌 기와 담장이라니, 정말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지 않니?”
어느 집 담벼락은 낙서로 가득하다. 가만히 읽어보면 까만 사인펜으로 오밀조밀 적어 내려간 사람들의 크고 작은 소원들이 빼곡하다.
“이 담벼락에 소원을 쓰면 꼭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단다. 벽화마을답게 펜을 모아 둔 꽂이에도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져 있구나”
“다녀간 사람들이 정말 많네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써내려 간 소원들이 모여서 또 다른 벽화가 탄생한 것 같아요!"
다른 나무들은 100년, 200년 잘도 사는데 이 나무는 그러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렇게나 굵고 높게 자란 것은 아무 드물어서, 이 종류의 나무 중에서는 우리나라 최고령이란다.
“이렇게 큰 높게 솟은 것은 오랜만이구나. 보통 이렇게 높게 자라지 않는 것은 알고 있지? 아마도 비파정 사람들의 사랑으로 이렇게 자란 것이 아닐까?”
“맞아요. 그런데 이 나무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는 약으로도 쓰였데요!”
정말 생동감 넘치는 벽화부터 이정표를 대신하는 벽화까지. 이곳의 벽화들은 화려하기 보다는 소박한 시골 정서를 담고 있다. 가장 인기가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빨리 와보세요!” “와! 꼭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나는 것 같구나. "
"‘소중한 이에게 장미 한 송이를’ 이라니, 마비정 마을은 계속해서 사랑이 이어져 오는구나.” “맞아요. 그리고 사진을 찍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벽화인 것 같아요."
길게 뻗은 담벼락에 꽃이 만발한 봄의 풍경에서 시작해 추위에 떨며 불을 피우는 모습까지. 사계절의 모습이 한 번에 담긴 춘하추동 벽화가 있다. 어떤 모습을 담은 것일까?
“이 길을 걸으면 1년이 한 번에 지나가네요. 현대적인 그림은 아닌 것 같고, 한자와 어우러진 동글동글한 사람들의 모습이 참 매력적이에요.”
“이 벽화는 마비정 사람들의 1년간의 생활을 담은 것이란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그들의 옷 차림새와 행위들이 꼭 옆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지 않니?”
마비정의 그림들은 그저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 속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지기도 하고, 읽고, 쓸 수 있으며 직접 그림과 소통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비정 마을에서 어떤 벽화가 가장 기억에 남니?”
“음, 저는 움직이는 듯한 소와 목줄을 직접 끌어볼 수 있었던 강아지 그림이 좋았어요!! 구경하고,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림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벽화의 위치가 상세히 그려진 지도를 따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림 속 세상에 빠져듭니다. 안내문구 없이 마을 전체에 그려진 그림을 찾아다녀야 하는 수고를 덜어내 준 지도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림을 하나 둘 그려 넣어 정겨운 내음을 풍기게 하더니, 차분히 그것을 둘러볼 수 있게 해준 마비정의 배려는 어느새 마음 한 구석을 따뜻하게 합니다. 향토적 내음으로 추억을 되새기게 해 주고, 소박한 소원을 담은 벽화까지도 볼 수 있는 이 곳에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게 될까요?
전통방식 그대로, 지천참게 여행
- 충청남도 청양군 -
사람들이 가을 참게에 열광하는 이유는 맛도 맛이려니와 향수의 어종이기 때문일 겁니다. 늦가을 참게들은 산란을 위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유역으로 지류를 따라가면 지금도 하천 지류에 옛 선인의 방식 그대로 게살과 게막을 치고 참게 잡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추억의 풍광은 바로 칠갑산 맑은 물이 갈 지(之)자로 흐르는 충남 청양의 지천구곡에 있습니다. 오늘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미션은 바로 ‘옛 전통방식 그대로 참게 본연의 맛을 찾아라!’입니다.
칠갑산 맑은 물이 갈 지(之)자로 흐르는 충남 청양의 지천구곡은 참게의 고향으로 불렸다. 지금 이곳에 가면 청정자연 속 향수를 자극하는 옛시절이 떠오를까?
“참게는 지난 시절 가재와 더불어 개울에서 흔히 잡던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어. 지금도 금강 유역 청양에서는 전통 참게 잡이가 한창이라지?”
“맞아. 지천참게를 찾는 건 맛 이상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지. 또 칠갑산 청정수가 흐르는 지천은 워낙 맑아 예로부터 참게의 명산지이기도 했고.”
참게는 10월~11월이 제철이다. 살이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하지만 금강지류 지천의 야행성 참게를 잡는 시기는 따로 있다고.
“횃불 잘 들고 따라와유. 오늘은 좀 더 상류로 올라가볼 테니께.” “어르신. 지금 참게 잡기는 좀 이르지 않을까요?
“모르는 소리~. 야행성 참게는 요즘이 딱이여. 게막 하나에서 잡히는 참게가 하룻밤에 많게는 1000마리도 넘는다니께.”
대나무로 된 게살과 볏짚으로 만든 게막을 동원한 전통 방식의 참게 잡이를 직접 경험해 보는 것도 신선한 재미다. 하지만 그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가능한데?
“참게가 하류로 이동하니까 이쪽 여울목에 게살을 설치해둘게. 이제 네가 참게를 게막 앞까지 유인해봐.”
“어떻게? 물장구를 쳐볼까? 이렇게!” “허~ 이 사람들! 이 컴컴한 데서 그렇게 물장구를 친다고 참게가 보이기나 하겠어?!”
느긋하게 기다려 게막에 걸려드는 게를 주워 담지만 자칫 억세게 운 좋은 놈들이 게막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이때 우리 선인들은 어떤 기지가 발휘됐을까?
“밤새 게막에 쭈그려 앉아 지나가는 참게를 열심히 주워 바구니에 담으면 내일 아침은 공짜로 줌세! … 아니, 이 친구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이 참게 다 빠져나갔네! 어이쿠~”
“아! 이거 어쩌죠?!” “괜찮여. 빠져나가는 웬만한 참게는 싸리나무로 만든 원추형의 통발이 기다리고 있으니.”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참게장이 귀했던 것처럼 마을마다 참게잡이 게살과 게막을 갖고 있는 것도 부의 상징이었다는데?
“참게는 조선시대 임금의 진상품으로 올릴 만큼 명품 행세를 했고, 20년 전에도 참게 한 마리에 5000∼6000원을 호가했다고 하니, 웬만한 부잣집 아니면 참게장 맛보기가 하늘에 별따기였겠어. 안 그래?”
“그러고 보니 ‘게막 하나와 논 다섯 마지기는 안 바꾼다’는 청양 옛말도 정말 있었을 법해.”
음식 맛보기에 앞서 일단 추억의 밥그릇을 살펴야 한다. ‘전통식품은 전통그릇에 담아야 한다’는 주인의 소신으로 옛날 고향집 밥상에 차려졌다. 어떤 밥상이기에?
“福자가 선명한 사기그릇에 밥과 찬이 담겨 나오는 거며, 밥도 고봉으로 담아 주시고,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정감 넘치는 밥그릇에 추억을 밥상에 마주한 느낌이에요.”
“그뿐일까. 무쇠솥에 갓 지은 기름진 쌀밥을 참게장이나 참게탕과 곁들여 먹어야 밥도둑이란 말도 가능하지!”
살과 장이 꽉 찬 참게를 숙성시켜 만든 참게장은 깊은 향과 맛이 일품. 윤기 흐르는 더운밥에 게장을 비벼먹으면 게 눈 감추듯 밥이 사라지고 공기 몇 그릇이 쌓인다.
“본래 참게는 겉껍질이 딱딱한데, 이 집의 참게장은 오돌오돌 씹힐 만큼 야들야들하네요?”
“그만큼 숙성이 잘돼 있으니께. 간장게장 맛은 3개월 동안 조선간장을 6~7회 반복해서 끓여 부으며 깊은 장맛을 냈고. 누룽지랑 조합도 괜찮으니까 함 잡숴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참게는 소 한 마리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뜻을 이제 알겠네요!”
마른 김에 밥을 한 숟가락 얹고, 간장게장을 반 숟갈 떠 얹은 뒤 참게탕의 배추시래기를 건져 올려 먹는 조합도 꿀맛이다.
“우리 마을은 웬만한 식재료는 친환경적으로 직접 생산한 것을 쓰니깐. 참게탕에 넣는 배추시래기도 그늘에 4개월 이상을 말린 거여. 그래서 여느 무청 시래기보다는 더 깊은 맛이 있지.”
“정말,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싶어요!”
칠갑산 풍경에 취해 세월 가는 줄 모르던 참게가 늦가을 나를 유혹한다면, 거울 같은 수면에서 청둥오리가 날아오르는 지천구곡의 절경이 자꾸만 발길을 잡아끈다면 더 이상 지체할 겨를이 없습니다. 낮에는 산천을 유람한 뒤 암청색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찾아드는 지천 까치내마을에서는 게막과 조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횃불을 밝힌 마을주민을 만나면 짭조름한 참게장으로 여행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이번 여행은 청양군 장평면 지천구곡으로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