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강에 남은 역사- 함벽루, 연호사, 옥전고분군, 국내여행,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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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 지역호감도

황강에 남은 역사- 함벽루, 연호사, 옥전고분군


합천은 경상남도에서도 산간내륙에 위치한 곳이다. 산이 많고 넓은 평야는 별로 없어 너른 강보다는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계곡이 많다는 뜻으로 본디 협천이라 불렸다. 지금의 합천이라는 이름은 처계와 삼가 지대가 협천군으로 편입되면서 3개의 고을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으로 불러야 한다는 여론이 만든 작품이다. 협천이라는 한자어는 그대로 유지하되 읽을 때는 합천으로 부르던 것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이처럼 좁은 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고장, 합천을 유유히 흐르고 있는 황강에서는 삼국시대부터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전란의 시대, 눈물 새겨진 역사

  • 현재의 황강을 보면 래프팅이나 각종 수상 레저등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황강에도 오랜 역사이야기가 있다.

황강은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군사요충지였던 곳이다. 그 흔적이 지금도 대야성이라는 성으로 남아있다. 특히 이 대야성에서도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남쪽 석벽 위에는 연호사라는 절이 있다. 642년, 백제의 1만 대군이 신라를 침공해 대야성을 공격했던 데에서 유래한 절이다. 수성전의 경우 공격보다 수비하는 쪽이 유리함은 당연한 공식이다. 그러나 산술적으로 볼 때 방어하는 쪽에서 커버 가능한 범위는 방어 병력의 3배가량. 2천 명의 장병으로 1만 명의 맹공을 이겨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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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야성 남쪽에 오붓하게 자리한 연호사의 모습. 오른쪽에는 함벽루가 자리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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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벽루에 걸린 현판은 송시열의 글씨라 전해진다.

당시 신라군을 이끌었던 인물은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 당시 그는 대야성에 아내인 고타소와 함께 성주로 부임해 전쟁을 치르던 중이었다. 별다른 묘수가 없는 전투를 계속하다 대야성은 결국 함락되었다. 성주였던 김품석과 아내 고타소, 그 자녀까지도 백제군의 손에 의해 모두 죽었다. 2000여 명의 장병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의 억울한 영혼을 달래기 위해 와우선사가 643년에 세운 것이 연호사다. 그 이후 연호사가 이름을 떨치거나 역사 속에서 크게 부각되는 일은 없었지만 지금도 극락전, 삼성각, 요사채 등이 남아있어 그 이야기를 전한다.
 
이때의 일은 후일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때도 영향을 미쳤다. 삼국통일을 이루기 전인 647년 압량주도독이었던 김유신이 백제를 쳤을 때 생포한 장수 8명과 백제 땅에 묻힌 고타소와 김품석의 유골을 교환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백제를 멸망시킨 뒤, 법민태자가 백제의 왕자였던 부여융에게 여동생을 억울하게 죽여 사비성 옥중에 파묻은 것을 추궁한 기록도 태종 무열왕의 슬픔과 원한이 오래 갔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처럼 붉은 피에 젖은 역사와는 배치되는 이름을 지닌 정자가 있으니 바로 함벽루다. 푸를 벽자에 젖을 함자를 써 푸른 물결에 젖는다는 뜻을 지닌 함벽루는 연호사의 발아래 황강을 바로 마주 본 채로 서 있다. 1321년에 처음 세워져 수차례 중건을 거쳤으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학자들이 편액에 글을 보탰다. 합천이 고향인 남명 조식을 비롯해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등 당대의 유학자들의 글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고려 시대에 지어진 누각이 지금까지 남았으니 웬만한 정자와 누각보다도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셈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함벽루의 특이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누각 처마의 빗물이 바로 황강으로 떨어지며 절묘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누마루에 앉으면 마치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운치를 즐길 수 있다.
 
문화관광해설에 따르면 정자가 세워질 당시 홍수로 많은 나무가 떠내려온 것이 함벽루를 세우게 된 계기라고 한다. 나무 하나하나도 엄연한 자원이었으니 강물에 흘려보내기는 아까웠던 것. 황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기에 연호사 바로 밑에 함벽루가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철의 왕국 가야의 숨결, ‘옥전고분군’

  • 가야의 강성함을 보여주는 옥전고분군의 모습.

낙동강 지류인 황강변 구릉을 방문한다면 4세기에서 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가야 고분군을 만날 수 있다. 출토된 유물 중에는 철제무기 외에도 토기류, 갑옷 및 마구, 장신구 등이 있다. 갑옷의 경우, 철제품 중에서도 매우 까다로운 공정을 거치게 된다. 나무로 갑옷 틀을 만드는 것부터 철판을 오리고 신체의 곡선에 맞춰 잘 맞도록 두드린 뒤 구멍을 뚫어 질긴 가죽끈으로 고정시켜야 단단하면서도 몸에 잘 맞는 갑옷이 완성된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평민들에게 배급되기 어려운 것도 당연지사. 하여 이 지대는 무덤의 크기나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볼 때 가야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측되고 있다. 더욱이 말에게 씌워주는 말투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동시대를 놓고 볼 때 무덤에서 말투구가 출토된 예는 부산 복천동고분군에서 발견된 1점, 일본에서 발견된 2점뿐이다. 헌데 옥전고분군에서는 말투구가 5점이나 발견된 것이다. 이처럼 화려한 철기 기술을 남기고 멸망한 가야의 역사는 지금도 많은 부분이 수수께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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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에 남아있는 문화유산들, 황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여러 역사 유적지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7년 09월 0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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