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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에 흐르는 왕건 이야기


고려 초기의 명운을 가를 뻔했던 전투로 동산전투를 뽑는다. 견훤의 매복계와 수군 승전으로 인해 왕건은 큰 위기에 몰렸고 신숭겸을 비롯한 충신들을 잃어가며 패전지장의 신세를 겪었다. 대구 동구에 위치한 팔공산의 이름이 ‘여덟 명의 공신이 죽은 산’이라 하여 붙여졌다니 그 진위는 몰라도 극히 치열한 상황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대구 동구의 여러 지명은 이 동산전투에서 유래된 경우가 상당히 많다. 반야월과 안심, 지묘동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구 동구에는 이런 이야기 유산을 활용한 걷기 길이 있다. 바로 팔공산 왕건 길이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를 비롯해 대구 동구의 문화와 특산물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길이다. 

                    
                

왕건 길의 시작, 신숭겸 장군 유적지 

팔공산 왕건 길은 걸으며, 왕건과 수하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왕건 길의 첫 번째 코스는 용호상박길이다. 신숭겸유적지에서 열재까지 올라가는 길로 4.3km 가량의 길이로 조성되어 있다. 왕건의 패주가 거의 확실해진 상황에서 왕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대신 왕의 옷과 투구를 입고 몸을 던졌던 신숭겸 장군을 기려 만든 유적지다. 이 동네의 이름이 지묘동인 것도 신숭겸 장군의 꾀가 용함을 칭찬하여 붙은 이름이니 이미 여기서부터 왕건과 그 수하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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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 길에는 견훤에게 쫓기는 왕건을 위해 죽은 신숭겸 장군의 사당이 있다.

동화천을 건너 거슬러 올라가면 우뚝 솟은 홍살문이 보인다. 이 중 제일 윗길에 위치한 것이 표충사. 신숭겸 장군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한편 이 홍살문 뒤로 있는 것이 신숭겸 장군 순절단이다. 당시 왕건의 옷을 입고 그의 흉내를 내던 신숭겸은 결국 전사해 그 수급이 완산주로 보내지게 되었다. 하여 거둘 수 있던 것은 목 없는 시체와 그의 의복 정도였던 것. 시체는 춘천으로 보냈지만 그의 흔적이 남은 의복은 전사한 자리에 순절단이라는 이름으로 남겨놓았다. 그나마도 발에 있는 북두칠성 모양의 사마귀가 아니었다면 찾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전해진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용호상박길은 이후 고개가 험해 열명의 사람이 모이기 전까지는 지나가지 않았다는 열재까지 이어진다.

 

아픈 다리 쉬어간다 문화예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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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짜유기박물관에선 우리나라 전통 유기와 유기 작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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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문예공원은 '시인의 길' 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용호상박길부터 묵연체험길까지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 특히 부남교에서 물넘재까지의 구간은 발바닥 바위, 통시바위 등 넘어지거나 미끄러지기 쉬운 암석들이 있어 더욱 조심해야 할 길이다. 그러나 물넘재를 넘겨 나오는 4번째 길은 다소 만만하게 걸어갈 만 하다. 길이 가파르지 않고 우리 문화유산을 고루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방짜유기박물관과 한국 현대시 육필문예공원은 문화예술길의 의미를 한껏 살릴 수 있는 곳이다.

방짜유기박물관은 유기 기술을 살리고 꾸준히 보존해온 이봉주 유기장이 기증한 방짜유기를 기반으로 연 박물관이다. 보통 방짜유기라 하면 식기를 주로 떠올리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품목이 있다. 유기로 정교하게 금속 판을 늘려가며 만든 상이나 제기 종류를 비롯해 꽹과리와 같이 유기로 만든 우리 전통 악기들까지 망라한 전시물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앞에 위치한 한국 현대시 육필문예공원은 이 이름보다는 시인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시인들의 육필 자료를 모아 그들의 시를 글씨체 그대로 바위에 새겨넣은 것이다. 활자체가 아니라 손글씨를 새겨넣은 것이 더욱 정감이 간다.

 

비로소 안심한 곳, 구사일생길

동곡지와 반야월 일대로 연꽃이 가득 피어있다.

왕건이 비로소 사지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안심한 곳이 반야월 일대다. 견훤을 간신히 따돌리고 반야월로 왔을 때 시간은 이미 한밤중이라 달이 둥실 떠 있었다. 이 때를 일컬어 반야월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도 하고 혹은 이곳에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고 해 안심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도 한다. 다소 산세가 험한 초례봉에서 동곡지로 내려오면 바로 안심역 근처다. 동곡지와 반야월 일대에서 쑥쑥 자라는 연밭은 그 자체로 눈을 정화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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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 왕건길을 걸으며 느끼는 후삼국시대 역사체험. 살아있는 이야기 유산을 담아보세요!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3년 06월 20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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