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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호감도

국수 맛의 진수는 뭐니 뭐니 해도 ‘구포 국수’

낙동강 하구 인근에 자리한 부산 북구는 조선시대 때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큰 창고와 나루터가 있어 선박과 인부들로 늘 인산인해를 이뤘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는 구포 국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제면 업이 시작됐다. 광복 이후에는 구포 시장을 중심으로 국수 공장들이 더 늘어나더니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의 끼니로 국수 관련 업종이 더욱 번창했다.

					
				

피난민들의 끼니 

구포국수의 상차림은 단조롭지만 핵심 반찬은 다 담았다.

어려웠던 시절 피난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굶주린 배를 채우는 데는 구포 국수만 한 것이 없었다. 특히 구포 국수는 낙동강 바람이 불어오는 지리적 특성으로 다른 지역에서 파는 국수에 비해 짠 맛이 강해 더욱 인기가 많았다. 쫄깃한 면 맛도 한 요인이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1950년대만 해도 구포 시장 쪽으로 가면 공장에서 뽑아낸 국수를 널어 말리는 풍경이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구포의 여자들이 머리에 국수를 이고 부산 시내로 나가 국수를 팔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때 국수가 ‘구포 국수’라고 불리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다.
 

쫄깃한 면발에 진한 멸치 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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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송 썰어얹은 파와 유부, 김가루가 더해진 구포국수는 비주얼부터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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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이라기엔 양도 많다.

실제로 먹어 본 구포 국수의 맛을 어떨까. 구포 시장 안, 시장을 가득 메웠던 국수집들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곳이 있어 들러봤다. 입구에서부터 멸치 육수 끓이는 냄새가 주변을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칼국수와 김밥까지 메뉴가 더 다양해 졌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은 단연 ‘국수’다. 국수가 나오는 데까지는 수 분이 소요됐다. “주문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멀었느냐”고 불평하는 손님들에게, 주인은 “주문 즉시 바로 면을 삶아 대접하기 때문에 그렇다”며 달래는 일이 몸에 밴 듯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드디어 말로만 듣던 구포 국수가 나왔다.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듯 면이 불지 않고 탱탱해 보였다. 면 위에는 양념장과 부추, 단무지, 깨, 김 가루가 고명으로 얹어있었다. 오색 고명이 입맛을 자극했다. 

노란색 양은 주전자에 든 진한 멸치육수를 국수 위에 부었다. 탱탱한 면에 쫄깃함을 더한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앞에 놓인 땡초를 살짝 넣고 국물부터 들이켜니 배속이 바로 따듯해진다. 조미료 맛이 전혀 나지 않고 깔끔하고 시원한 것이 딱 입맛에 맞았다. 땡초의 매운 맛이 칼칼함까지 더해줬다. 면은 생면만큼이나 탱탱하고 쫄깃한 것이 별미 중의 별미였다. 늦게 나온다고 불평하던 옆 손님도 국수 맛을 보더니 이내 숙연해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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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역사와 함께해온 별미를 찾아 부산 북구!
쫄깃한 면발과 진한 멸치 육수로 맛을 낸 구포국수 한그릇 하실래요?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4년 01월 24 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