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에 나온, 전임 대통령의 가옥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대문에 걸린 태극기와 안내판이 없다면 평범한 주택으로 알고 지나칠 정도로 주변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개방되어 있는 검은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구형 세단 한 대와 다소곳이 앉은 검은색 수동펌프 한 대가 방문객을 맞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어느 골목길에서 한번쯤은 지나쳐 봤음직한 주택의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주택개량사업 시기인 1972년에 지어졌으며 그 시기 가장 전형적인 살림집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러한 전형성 덕분인지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2016년 1월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등장 가족 중 ‘동룡이네 가족’의 살림집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가옥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그대로 촬영에 쓰인 점이 특이하다. 학생주임의 아들이자 재간둥이로 출연하는 작중 인물인 류동룡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 장소에 좀 더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격변기 정치인의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접하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최규하 전 대통령(1979년 12월-1980년 8월 재임)의 모습은 그렇다 할 특별한 업적보다는 짧은 재임기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일까. 최규하 전 대통령은 재임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인간으로서 덤덤하게 삶을 살아갔다. 그리고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준공된 이후 최규하 전 대통령이 2006년 서거하기까지 공관 거주시기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동안 내내 거주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의 삶이 당긴 곳,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대통령보다는 전직 외교관이자 남편, 그리고 아버지였던 최규하의 모습이 짙게 배어 있다,
 

일단 집 안으로 들어서면 1980년대에서 멈춰버린 듯 옛날 그대로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도배와 장판, 그리고 가구, 주방, 에어컨, 선풍기, 자동차 등 세간 살림은 모두 집이 지어졌을 때부터 함께 있었던 것처럼 오래 된 골동품들로 일색이다. 21세기까지 생존하였던 사람이 살았던 집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다. 서거 전까지 직접 연탄을 갈며 난방을 하고, 장남이 미국에서 사용하던 에어컨을 줄곧 사용하였던 그의 근검절약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하나 더 시선을 끌게 되는 것은 최규하 전 대통령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서재에 빼곡하게 걸려 있는 수십여 벌의 정장들과 ‘부지런한 노력만이 그 공을 인정 받는다’라는 유근유공(惟勤有功)이라는 좌우명은 전직 외교관이었던 그가 자기관리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또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최규하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전 영부인이었던 홍기 여사가 말년에 와병중일 때, 최규하 전 대통령이 함께 홍기 여사의 불편을 덜기 위해 직접 지시하여 개조한 1층 부엌의 화장실 공간, 그리고 그의 앞으로 보낸 어린 손녀딸의 사랑이 담긴 삐뚤빼뚤한 엽서는 그가 부인에게 어떤 남편이었는지, 또 가족에게 어떠한 가장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극적인 역사의 격류 속에서 불운하고 존재감 없는 지도자로 기억되는 최규하 전 대통령. 하지만 그의 삶이 얽힌 공간을 거닐다 보면 그가 미처 우리에게 남기지 못한 조용한 미덕을 흔적이나마 접할 수 있다. 주택가 사이에 가만히 자리 잡은 최규하 대통령 가옥에 잠시 들러 잊고 있던 역사의 한 단면을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