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이여 영원하라, 착량묘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은 전국에 총 10여 개가 있으며 그가 이루었던 훌륭한 업적은 아직도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사당의 효시가 된 것은 바로 경남 통영시의 착량묘이다. 그의 공을 높이 산 임금이 지은 곳도, 돈 많은 유림과 권세가들에 의해 지어진 곳도 아닌 백성들이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지은 곳이기에 착량묘는 그 어느 곳보다 의미가 깊다.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위치한 이곳, 착량묘 앞에 서면 이순신 장군이 우리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것처럼 든든한 기운이 샘솟을 것이다.
백성들의 마음이 뜨겁게 녹아 있는 충무공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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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많은 유명한 사당이 있지만, 그중 이순신 장군의 혼백이 가장 머무르고 싶어 할 곳, 바로 경남 통영시의 착량묘가 아닐까 싶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장군을 따르던 백성들이 정성을 다해 지은 사당, 착량묘. 언덕 위에 초가를 짓고 위패와 영정을 모시며, 그가 순국했던 날인 매년 음력 11월 19일에 제사를 지내던 것이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
착량이란 뚫을 착, 대들보 양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임진왜란 때 당항포해전에서 참패한 왜적들이 쫓겨 달아나다가 미륵도 통영반도 사이에 가늘게 이어진 협곡에서 돌로 다리를 만들어 도망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만 보아도 왜군을 무참히 무찌른 이순신 장군의 위엄이 전해지는 듯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낡아져 버린 착량묘는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고쳐 지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긴 언덕 위까지 이어져 있는 계단을 밟고 올라서야 다다를 수 있는 착량묘는 충무공의 드높은 충절과 위업을 기리려고 일부러 높은 언덕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마치 높은 곳에서 통영 앞바다를 굽어보며 왜적을 물리치던, 위엄 있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만 같다.
아직 이곳에는 이순신 장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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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량묘는 사당, 서재, 동재, 고직사 등 4개의 건물과 내삼문, 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착량묘 앞에는 충무공 한산대첩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한산대첩비 뒤에 위치한 외삼문을 열면 착량묘 정당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정당 안으로 들어서면 이순신 장군의 품속으로 들어온 듯 그의 강직한 기개가 이곳의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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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문을 들어서면 이보다 조금 아담하게 느껴지는 두 번째 문, 내삼문이 나온다. 내삼문이 소담스레 품고 있는 것은 바로 정당인 착량묘인데, 민초들이 중심이 되어 지은 사당이라 그런지 아담한 규모에 손을 들면 처마가 닿을 정도로 아주 낮은 구조이다. 사당 안에는 장군이 앉았을 법한 의자와 향초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400여 년 동안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기신제가 열려왔다고 하니, 충무공을 생각하는 통영 시민들의 진득한 마음이 전해진다.
착량묘의 서재는 2칸의 마루와 1칸의 방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향사를 준비하는 용도로 지어진 건물인 동시에 지방민 자제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마을 아이들의 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던 곳이다. 이곳 서재와는 전혀 달라 보이는 모양의 건물, 동재는 서원의 양식을 갖추려고 일부러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정갈하게 정돈된 건물의 모습에서 단호한 느낌마저 전해지는 착량묘. 이곳을 한 바퀴 돌아보노라면 충무공을 생각하는 마을 주민들의 애정 어린 마음과 자부심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충무공 사당의 효시, 착량묘는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던 이순신 장군의 은혜에 보답하는 백성들의 값진 선물이 아닐까요?
글 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8년 03월 31 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