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를 대표하는 예술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이자 교산 허균의 후손인 소치 허련. 남화, 혹은 남종화를 사랑하는 트래블피플이라면 그의 이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활동했던 화가인 소치 허련에게는 스승이 둘 있으니, 그 유명한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다. 두 스승에게서 서화의 수업을 고루 받아 시와 글씨, 그림 모두에 능했던 허련이지만 그가 가진 재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그림에 대한 재주였다. 허련의 그림을 본 김정희가 직접 허련에게 ‘소치(小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이는 원나라 때의 4대 화백 중 한 사람인 대치(大痴) 황공망과 견줄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뜻이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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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림산방 안에서 만나볼 수 있는 풍경들. 한결같이 고요하고 아름답다.

허련을 둘러싼 인물들의 쟁쟁한 이름은 허련을 담은, 혹은 허련을 닮은 집인 운림산방을 둘러보는 감상을 배가시킨다. 글에 대한 허련의 재능은 <홍길동전>의 저자였던 교산 허균에게서 왔을지 모르나,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로부터의 허련을 향한 애정은 그의 인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되었을 때 험한 물길을 뚫고 세 차례나 제주까지 찾아갔던 허련. 김정희가 세상을 뜬 뒤에는 미련 없이 한양을 떠나와 진도에 자리를 잡았으니, 그가 머무는 집에 아침저녁으로 아름다운 구름과 안개가 찾아들어 허련이 스스로 집의 이름을 운림산방(雲林山房)이라 하였다.

 

남도 예술의 산방(産房), 예술을 닮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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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림사 안에는 소치 허련의 초상화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판각)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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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치 기념관에서 허련 일가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부터 그의 4대손까지가 그림을 그렸던 5대의 화실이다. 소치 허련의 화실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둘러봄직한데, 5대 동안 화백의 삶이 이어진 곳이라니 놀라울 따름. 이곳에서 태어난 그림들이 진도를 화(畵)의 고장으로 기억되게 하고 있으니 어찌 이 아름다운 집을 찾아보지 않을 수 있을까. 운림산방 안의 소치 기념관에는 허련 가문의 남종화를 비롯한 424점의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으니, 이곳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이 남도 예술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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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승 80호, 운림산방이 가진 아름다움에는 허련의 손길이 배어 있다. 

이 집은 화실을 목적으로 지은 것이었으나, 허련은 집을 선경(仙境)으로 꾸미는 데에도 손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허련이 꾸민 풍경에 쌍계사의 상록수림이 어우러지니, 운림산방이 명승으로 꼽히는 이유는 한 발을 들여 놓기만 해도 실감할 수 있을 것. 허련의 붓끝에서 새어 나온 듯 담백하고 고요한 풍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운림산방이다. 예술을 두루 즐기며 설중매처럼 맑은 향기를 머금었던 그의 삶 속, <매화서옥도>에 허련이 남긴 글귀 하나가 있으니 매화 향을 찾아 온 객이 된 듯 사뿐한 발걸음으로 진도를 찾아보자. 안개 속에 붓끝으로 그린 매화처럼 아련한 정취 가득한 그곳, 운림산방이 기다리고 있다. 

 

“……그윽한 집은 시냇가에 깊고 문 앞길엔 발자국이 끊겼다.
누가 멀리서 찾아오는가. 매화 찾아 나선 객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