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예릉] 강화도령에서 왕이 된 남자, 철종, 국내여행,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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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예릉] 강화도령에서 왕이 된 남자, 철종


철종이라는 묘호보다 ‘강화도령’으로 후대에 더 많이 알려진 철종(哲宗, 1831~1863년)의 생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의 가계도부터 살펴봐야 한다. 서삼릉 관리사무소에서부터 우거진 소나무 길을 따라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철종의 능인 예릉이지만 그의 가계도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조선 제25대 철종의 가계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1대 왕 영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종은 전계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전계대원군의 할아버지는 바로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추존왕 장조)이다. 쉽게 말해 사도세자는 철종의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는 버려진 왕족이나 다름없었기에 그에 자손들 역시 왕족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기에 철종의 조부 은언군은 아들의 모반죄로 강화에 유폐됨에 따라 함께 그의 일가는 강화로 건너가게 되었다. 상식적으로 철종 일가에선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족보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왕위에 오르다

  •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이원범은 안동김씨에 의해 꼭두각시 왕이 되었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이원범은 안동김씨에 의해 꼭두각시 왕이 되었다.

이 당시 조정에서는 순조 때부터 극심한 세도정치의 폐단이 지속되고 있었다. 순조에 이어 즉위한 헌종 역시 세도정치의 폐단을 끊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으며, 풍양조씨 가문으로부터 다시 정권을 빼앗은 안동김씨 가문은 세도정치를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꼭두각시를 찾기 시작했다. ‘족보 뒤지기’가 시작된 것이다.

오랜 추적 끝에 순원왕후와 안동김씨 세도가문은 강화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원범(元範, 철종의 본명)을 찾아냈다.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왕실의 직계 후손이면서도 자신들이 마음껏 조종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적임자였다. 강화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던 철종은 문맹에 왕이 되기 위한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가 즉위한 1849년 실록을 찾아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대화가 있다.

임금이 답하기를, “일찍이 《통감(通鑑)》 두 권과 《소학(小學)》 1, 2권을 읽었었으나, 근년에는 읽은 것이 없오.” 하였다.
조인영이 아뢰기를, “독서와 강리(講理)는 참으로 성덕(聖德)을 이루는 근본이 됩니다. 만약 이미 배운 몇 편에 항상 온역(溫繹)을 더하여 힘써 행하고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옛부터 지금까지 성현(聖賢)의 천언 만어(千言萬語)가 어찌 《소학》 한 편의 취지에 벗어남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그러나 어렸을 때에 범연히 읽어 넘겼으니, 지금은 깜깜하여 기억할 수가 없소.” 하였다.
<철종실록 1권, 즉위년(1849년 6월 9일)>
 
실록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철종의 이런 무지함에 순원왕후와 세도가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순조와 헌종에 이은 세도정치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 것이다. 같은 날 대왕대비가 임금에게 이런 내용의 하교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망극한 일을 당한 속에서도 5백 년 종사(宗社)를 부탁할 사람을 얻게 되어 다행스럽소. 주상은 영조(英祖)의 혈손(血孫)으로서 지난날 어려움도 많았고 오랫동안 시골에서 살아왔으나, 옛날의 제왕(帝王) 중에도 민간에서 생장한 이가 있었으므로 백성들의 괴로움을 빠짐없이 알아서 정사를 하면서 매양 애민(愛民)을 위주로 하여 끝내는 명주(明主)가 되었으니, 지금 주상도 백성들의 일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오. 백성을 사랑하는 도리는 절검(節儉)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비록 한 낱의 밥알이나 한 자의 베[布]도 모두가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인 만큼, 만일 절검치 않는다면 그 피해는 즉각 백성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백성들이 살 수 없으면 나라가 유지될 수 없으니, 모름지기 일념(一念)으로 가다듬어 ‘애민(愛民)’ 두 글자를 잊지 마오. (뒤 생략)”
<철종실록 1권, 즉위년(1849년 6월 9일)>
 
하교의 내용이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다. 철종 즉위(1849~1863년) 후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수렴청정했으며, 대왕대비의 근친 김문근의 딸을 왕비(철인왕후)로 삼으면서 세도정치는 절정을 치닫게 된다. 19세에 옥좌에 앉은 꼭두각시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도정치 시기 내내 진행된 삼정의 문란은 더는 심할 수 없을 만큼 극에 달하게 되고, 무능한 철종은 그저 여색에 빠져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8명이 부인을 둔 철종은 정식으로 기록되지 않은 자식까지 합하면 10명 넘게 낳았지만 안타깝게도 제대로 목숨을 이어간 자식은 거의 없었다.
 

[트래블아이 왕릉 체크포인트]
서삼릉 경내에 함께 있는 비공개릉 효릉과 달리 철종과 철인왕후가 잠들어 있는 예릉(睿陵)은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왕과 왕비의 능이 나란히 놓인 쌍릉으로 고종 때 조영된 예릉은 조선시대 예법과 절차를 기록한 <국조오례의>에 의거하여 능제를 적용한 마지막 능이다. 예릉 이후에 조영된 홍릉(고종)과 유릉(순종)은 황제릉의 양식을 따랐다.

조선왕릉을 몇 번 다녀봤거나 왕릉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한 사람이라면 홍살문 앞에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예릉은 <국조오례의>에 의거하여 조영된 다른 조선왕릉과 달리 참도가 다르다. 향도와 어도의 2단 참도가 아닌 3단으로 조영되었고, 정자각 처마마루의 잡상 또한 기존 3개에서 5개로 많아졌다. 세도정치를 끊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함인지, 황제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마음을 미리 표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서삼릉 입구에서 예릉으로 향하다 보면 효창원과 의령원을 지나친다. 효창원은 정조의 맏아들인 5세 때 요절한 문효세자의 묘로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원래는 효창공원(서울 용산) 내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옮겨졌다. 의령원은 3세 때 요절한 의소세손의 묘이다. 의소세손은 바로 사도세자의 맏아들인데 정조의 형인 셈이다.

사실 조선왕릉의 능제에 따르면 왕과 왕비의 능역 내에 후궁이나 왕자, 공주 등의 묘는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아마도 일제가 우리 왕실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문화재 관리의 편의성을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예릉과 함께 효창원과 의령원을 살펴본다면 능과 원, 묘의 차이점을 직접 눈으로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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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5년 07월 1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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