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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영릉] 아버지처럼 오래 살지 못한 아들, 효장세자


파주삼릉의 하나인 영릉(永陵)에는 ‘진종(眞宗, 1719~1728년)’이라는 생소한 능호를 가진 또 한 명의 추존왕이 잠들어 있다. 진종이라는 능호보다 효장세자(孝章世子)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719년 2월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와 정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조는 원비 정성왕후와 계비 정순왕후 사이에서 원자를 낳지 못했기에 그는 맏아들로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0살에 요절한데다가 아버지 영조와 그 뒤를 이은 정조, 사도세자까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들의 굵직굵직한 업적과 많은 이야기에 묻혀 우리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장수한 영조, 단명한 진종 

  • 영조가 그토록 바라던 후손이었던 효장세자는 안타깝게도 10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영조가 그토록 바라던 후손이었던 효장세자는 안타깝게도 10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영조의 장남이자 숙종의 첫 손자였던 진종은 숙종이 생전에 태어난 유일한 손자이기에 그 기쁨이 숙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법도 한데 진종에 관한 기록은 영조 때가 유일하다.

임금이 친히 효장세자(孝章世子)의 재실(榟室)에 상(上)자를 쓴 뒤에 거애(擧哀)하고 시호(諡號)를 내렸으며,【시호는 위에 보인다.】 명정(銘旌)을 바꾸었다.
<영조실록 21권, 5년(1729년 1월 13일)>
 
영조 때도 세자가 살아있을 때의 기록은 시호를 내렸다는 것 외에는 찾아보기 힘드니 도무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추측이 어렵다. 다만 영조가 손수 기록한 내용 중 어린 효장세자의 인품이 빼어나 영조가 그를 무척이나 아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는 있다. 효장세자는 1726년에는 조문명의 딸과 혼인하니 그녀가 바로 영릉에 진종과 함께 잠들어 있는 효순왕후다. 8살에 가례를 올리고 10살에 죽었으니 다른 왕들이 하나씩은 가진 로맨스나 스캔들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며, 이들 사이에 왕세손이 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세자빈에 책봉된 효순왕후 역시 37세의 나이로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나니 지아비만큼이나 슬픈 운명이다.

 

  •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효장세자 곁에는 그를 지키는 비각이 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효장세자 곁에는 그를 지키는 비각이 있다.

효장세자가 10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영조가 얼마나 슬퍼하였는지에 대한 내용은 영조실록 20권, 4년(1728년 11월 16일)의 기록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아래 영조실록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니, 이를 통하여 효장세자에 대한 영조의 애틋한 마음을 들여다 보도록 하자. 

효장세자가 세상을 떠나던 날, 영조는 신하들 앞에서 몹시 슬퍼한다. 밤 3경(三更) 1점(一點)에 왕세자가 창경궁의 진수당에서 훙서하였다. 이날 종묘와 사직에서 두번째 기도를 거행하였는데, 밤에 병이 더욱 심해져 해시에 홍서하였다. 임금이 영의정 이광좌·병조 판서 조문명 등을 대하여 슬피 곡하며 말하기를, “종묘·사직을 장차 어찌할 것인가?” 하고, 한참 만에 곡을 그쳤다. 임금이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내시를 시켜 흑곤포를 담은 검은 함을 들려 앞세우고 임금이 뒤따라 나왔다.

장차 복하려 할 때에 이광좌가 말하기를, “신들은 춘방 및 입시한 여러 신하들과 함께 계하에서 곡한 뒤에 나가서 옷을 갈아입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에 사·부·빈객을 지낸 사람과 입학 때의 박사와 시임 사·부·빈객과 약방의 여러 신하들은 마찬가지로 계하에서 거애하라. 을유년 소현 세자 상사 때의 전례에 따라 궁성을 호위하고, 시임·원임 대신과 예판·승지·시강원·익위사는 모두 유문하고 들어오게 하라.” 하였다.

효장세자 진종이 죽은 후에도 아버지 영조는 1776년까지 50여 년을 더 산다. 왕세자 역시 영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헌세자(장조, 사도세자)가 책봉되었지만 그 역시 뒤주에 갇혀 죽으면서, 영조의 아들 모두는 아버지처럼 오래 살지 못하였다. 결국 영조는 장조의 맏아들이자 왕세손인 정조를 양자로 들였으며, 그 또한 장수했다고 보기는 힘드나 영조의 친아들들보다는 오래 살았으니 조금은 다행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트래블아이 왕릉 체크포인트]
조선 최고의 처세가 한명회의 두 딸 장순왕후(공릉, 예종 비), 공혜왕후(순릉, 성종 비)와 파주삼릉 내 영릉(永陵)에 함께 잠들어 있는 효장세자 진종은 영조에 의해 ‘효장’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1776년 정조에 의해 진종으로 추존되었다. 진종과 효순왕후의 쌍릉 형태로 조영된 영릉은 진종이 세자의 신분으로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기에 세자 묘의 예를 따라 조영되었다가 훗날 왕릉이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봉분에 병풍석과 난간석은 없으며 호석(護石)만 보일 듯 말 듯 나지막하게 둘렀다. 없으며 석물은 석호와 석양, 문석인이 한 쌍씩 지키고 서 있고, 무석인은 없다. 영릉(永陵)은 파주삼릉 중에서서 매표소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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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장세자가 일찍 떠나지 않았다면 사도세자의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6년 01월 1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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