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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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예송논쟁은 알지만 그 시기의 왕인 현종은 알지 못한다.

숭릉(崇陵)은 현종과 그의 비 명성왕후가 잠들어 있는 무덤이다. 세자 신분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있던 효종과 인선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현종은 조선의 역대 임금 중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지금으로 치면 국적이 두 개인 셈인가.

인조가 당한 삼전도의 굴욕을 갚으려 와신상담했던 효종의 북벌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3대에 걸친 복수의 칼자루는 현종에게 쥐어졌다. 그러나 거세게 불고 있는 당쟁의 바람은 그가 뜻대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즉위하자마자 아버지 효종의 상복(喪服)문제로 불거진 1차 예송논쟁은 그를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1674년에는 효종의 비가 죽자, 다시 조대비의 상복(喪服)을 놓고 싸움이 벌어지니 이것이 2차 예송논쟁이다. 이처럼 현종의 재위기간은 예송논쟁으로 시작해 예송논쟁으로 끝났다. 그의 재위기간에는 예송뿐만 아니라 조선의 유례없는 재난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수해, 냉해, 풍해, 충해, 역병, 기근, 흉년 등 그의 재위기간 15년은 그야말로 ‘재난종합세트’였다. 특히 1670년(경술년)부터 1671년(신해년)까지 이어진 이른바 ‘경신대기근’은 조선 8도 전체가 흉작이라는 사상 초유의 재난 속에 당시 조선 전체 인구의 25퍼센트 정도인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참극을 만들었다.

현종실록을 찾아보면 글로만 접했어도 안타까워 눈물이 날 지경의 상황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선산부의 한 여인은 그의 여남은 살 된 어린 아들이 이웃집에서 도둑질하였다 하여 물에 빠뜨려 죽이고, 또 한 여인은 서너 살 된 아이를 안고 가다가 갑자기 돌아보지도 않은 채 갔으며, 금산군의 굶주린 백성 한 사람이 죽을 먹이는 곳에서 갑자기 죽었는데 그의 아내는 옆에 있다가 먹던 죽을 다 먹고 나서야 곡하였습니다. 천성으로 사랑하는 관계인데도 죽이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며 죽음에 대한 슬픔이 먹을 때에는 나타나지 않으니, 윤리가 딱 끊겼습니다. 이는 실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현종실록 19권에 적힌 신해년 4월 6일의 모습으로 이는 경상 감사였던 민시중이 보고한 내용이다. 이처럼 재위기간 내내 계속된 당쟁과 재난 속에서 그가 아버지 효종의 恨을 풀어주기엔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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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문양의 정자각은 여러모로 힘들었던 현종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현종은 한 나라의 임금으로써 마지막 끈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비변사의 소속이었던 진휼청을 상설 기구로 독립시켜 군비를 대폭 축소시키고 국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돌렸다. 뿐만 아니라 김육이 만든 대동법을 호남지방까지 확대 실시해 최악의 기근을 극복해나갔다. 광해군 때 처음 시작된 대동법은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방식으로 토지를 많이 소유한 사람은 많이 내고 토지가 없는 사람은 세금을 내지 않는 방식이다. 오늘날의 경제 위기에도 적용되는 해법이라고 볼 수 있다.

당쟁과 재난의 힘들었던 시간 외에도 현종에게는 또 다른 이력이 있다. 바로 후궁이 없었다는 점이다. 많은 후궁을 거느릴 수 있었던 임금의 자리에 있었던 현종에게는 숭릉에서 함께 잠들어 있는 명성왕후가 유일한 여자였다. 물론, 명성왕후 몰래 딴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현종이 후궁이 없는 이유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째는 당시 예송논쟁 등으로 인해 혼란한 정국 속에서 후계자로 인해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현종의 의지였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예송논쟁과 함께 재위기간 내내 그를 괴롭힌 재난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재난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자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유력한 마지막 이야기는 현종의 부인인 명성왕후 때문이라는 설이다. 여러 기록에서 명성왕후 김씨는 성격이 사납고 시샘이 많으며, 조정에까지 간섭하는 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랬던 명성왕후가 성은을 입은 후궁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현종과 명성왕후는 오늘날의 법 제도와도 통하는 일부일처제를 지킨 유일한 왕으로 남아있다.    

 
[트래블아이 왕릉 체크포인트]
동구릉 관리사무소를 중심으로 서쪽 깊숙한 곳에 있는 숭릉(崇陵)은 천연기념물 보호와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로부터의 관람객 보호 차원에서 한때 비공개 능역으로 구분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 창덕궁에도 멧돼지가 출몰하는 상황이니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동구릉에 멧돼지가 나타날 만도 하다. 사실, 멧돼지까지는 아니어도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오색딱따구리나 각종 희귀 새와 더불어 고라니 등은 조선왕릉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친구들이다.

일부일처제(?)를 지킨 사이답게 숭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이 하나의 곡장(능이나 원 주위를 나지막하게 쌓은 담)안에 나란히 자리 잡은 쌍릉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왕릉과 왕비릉 모두 병풍석은 없으며 난간석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숭릉에서 눈여겨볼 점은 정자각이다. 동구릉 내에 함께 있는 휘릉처럼 익랑이 있으며, 정자각 건물로는 유일하게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정전 5칸과 배위청 3칸을 합쳐 총 8칸 규모의 숭릉 정자각은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보물 제1742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