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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도공들의 가마터, 부안청자박물관 되다


굴포만을 마주한 가마터. 낮은 구릉 곳곳에 도자기 파편이 널려 있다. 상품(上品)에 들지 못해 기어이 깨뜨린 조각들이다. 땅에서 파헤쳐진 고령토 덩어리들은 장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도공의 옹이 진 손가락이 물레를 돌리기 시작한다. 지하 5m에 묻혀 있던 흙들이 청자가 되는 과정이다. 빚어지고, 새겨지고, 그 위에 유약이 덧발려, 한 동의 고려청자가 태어난다. 고려 귀족들과 왕실, 멀리 송나라인들까지 탐한 고려청자의 제작 과정이다. 천 년 전, 지금의 부안 유천리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기도 하다. 전남 강진과 더불어 고려청자 생산지의 쌍두마차였던 전북 부안. 세월은 가고, 고려청자는 사기장의 손끝에서 명맥을 이어간다. 그리고 지금, 유천리 가마터에는 가마 대신 부안청자박물관이 들어섰다.

                    
                

‘앗, 발 밑에 고려청자가?’ 부안청자박물관, 어른이 더 좋아해

  • 부안청자박물관 입구에 있는 호리병 주전자 모형이 관람객을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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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현된 가마터가 금방이라도 달궈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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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안도 앞바다의 청자 매몰 현장이 재현돼 있다.

부안청자박물관 입구. 청자 호리병 모양의 주전자 모형이 관람객을 반긴다. 박물관 안은 어떨까? 이곳은 고려청자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또 도예체험도 할 수 있다. 사실 ‘고려청자’라 하면 전남 강진을 떠올리기 쉽다. 강진의 청자축제가 많이 알려진 탓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부안을 청자 주산지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까닭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다. 만약 부안여행길에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다면, ‘부안에 웬 고려청자?’라며 반문하지 말고, 반가운 마음으로 둘러보자.
 
비(翡)색 외관의 건물 안은 의외로 ‘컬러풀’하다. 가마터와 도자기를 콘셉트로 한 만큼, 곳곳이 어둡기도 하지만 체험실은 어린이들을 위한 듯 밝고 산뜻하다. 우선 가마터로 재현된 곳을 가보자. 빨간 조명이 금방이라도 활활 타오를 듯하다. 가마는 누에고치처럼 뭉툭하고 기다랗게 생겼는데, 여기에서 초벌구이 등이 이뤄진다. 비록 모형이지만 실제 같다. 얼마나 많은 청자들이 빛도 보지 못하고 조각났을까? 하지만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다. 흠 있는 것은 과감히 내치고 궁극의 美를 추구한 도공들의 장인정신 덕택에, 상감청자는 지금까지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가마터 풍경만큼이나 시선을 붙드는 코너는 많다. 고려 상감청자의 무역선을 재현한 코너, 물레 빚는 장인의 모습을 재현한 코너 등이다. 하지만 가장 압권은 바닷속에 묻힌 고려청자를 재현한 곳 아닐까? 이름하여 ‘비안도 앞바다에서 깨어난 고려청자’ 코너다. 실제로 이곳은 바닷속처럼 푸른 조명으로 돼 있다. 또 강화유리 바닥 아래로 청자 파편 모형들이 보인다. 모델이 된 비안도는 전북 군산시에 있는 섬인데, 지난 2002년 이 일대에서 12세기 후반의 고려청자가 거의 800 점이나 발굴됐다. 이 코너는 발굴 당시의 비안도 해저 모습을 실감 나게 재현한 곳이다. ‘박물관 뭐 볼 거 있나?’라며 시큰둥하던 어른들도 이곳에선 ‘와!’, 감탄사를 내뱉기 일쑤다.

 

백문이 불여일‘체험’… 도자 체험 하고, 가마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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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모양 스탬프를 찍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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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를 나르던 무역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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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실에서 청자를 만져볼까?

  • 부안청자박물관에서는 청자빚는 모든 과정을 순서대로 배울 수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청자체험실이 있다. 청자퍼즐을 맞추거나, 청자문양 스탬프를 찍어볼 수 있다. 체험의 하이라이트는 청자 만들기다. 고려청자를 크기별로 만들어서 가질 수 있다. 10~25cm 중 사이즈를 선택해 도자기를 만들면 박물관 측에서 초벌, 재벌해 배송해준다. 요즘 머그컵처럼 실생활 도예품을 만들어보는 체험이 유행인데, 그보다 기품 있는 청자를 만들어 볼 수 있다니 값진 체험이다. 물론 이 체험은 유료다.
 
손에 ‘흙’ 묻히기 싫다면 다른 체험들을 해보자. 고려청자의 제작과정을 알려주는 4D 영상실도 있고, 간단하게 상감기법을 체험해볼 수도 있다. 그도 저도 어렵다면, 박물관 입장할 때 받는 팸플릿의 ‘스탬프’ 칸에다 청자문양 스탬프를 찍어보며 아쉬움을 달래자.
 
박물관을 나서기 전 둘러볼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야외 사적지 가마 보호각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부안 유천리(박물관 소재지)에는 지금도 고려청자 가마터가 약 40곳이나 분포해 있다. 이 중 가마 2기에 보호각(지붕 등)을 설치해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이곳에 가면, 마치 오래전 주인이 떠난 집을 구경하는 것 같다. 지금은 차게 식었지만, 1000년 전 많은 도공들이 여기서 비지땀을 흘리며 혼을 빚었을 것이다. 그 많던 도공들은 다 어디 갔을까. 궁금해 질 무렵, 문득 부안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청자의 비(翡)색처럼, 부안 하늘이 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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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69호로 지정되어 있는 전북 부안의 유천리요지.
신비로운 고려 상감청자를 통해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역사와 전통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9년 11월 10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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