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12월. 계절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광양은 따뜻하고, 따스한 볕 가득한 광양시에서는 인문학 산책을 통해 그윽한 문향을 느껴볼 수 있다.
따스한 볕 가득한 인문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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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도시 광양에는 이균영과 정채봉, 윤동주와 정병욱 등 숙명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특별한 지음들의 애틋한 인연이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이상문학상 수상자 이균영과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로 ‘성인동화’라는 문학장르를 개척한 정채봉은 서로 ‘세상의 유일한 동생’이자 ‘육친’으로 일컬을 만큼 막역했다. 이균영이 광양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만난 두 사람은 1964년 8월, 광양 제일극장 휴게실에서 2인 시화전을 열 만큼 발랄하고 촉망받는 문학도였다.
이균영은 정채봉을 따라 백일장에 참여했고 정채봉의 주선으로 ‘학원’지의 학생기자가 되는 등 자연스레 문학의 길로 들어섰으며 젊은 날의 절망과 방황을 위로하는 등 서로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균영은 1951년 광양읍 우산리에서 태어나 광양중학교, 경복고등학교, 한양대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덕여대 교수를 역임했다. 단편소설 ‘바람과 도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제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신간회 연구로 단재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정채봉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할머니 손을 잡고 광양으로 이사 와 광양동초, 광양중학교, 광양농고(현 광양하이텍고)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정채봉은 훗날 광양농고 시절, 온실의 난로를 꺼뜨린 벌로 도서실 청소 당번을 하며 세계 고전을 섭렵했고 그 무렵 하루도 빠짐없이 쓴 수백 통의 편지가 습작의 시작이었다고 고백했다. 한국의 안데르센으로 불리는 정채봉은 어린이는 물론 성인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생각하는 동화를 대거 창작하며 새싹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광양북교 교가를 작사했으며, 그가 쓴 ‘광양읍내’에는 읍사무소, 향교, 서산마루, 칠성리 대장간, 인동리 유기점, 목성리 제재소, 흰구름 걸친 백운산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균영 생가 인근 우산공원에는 이균영 문학동산이, 정채봉을 창작의 길로 이끈 읍내 골목에는 정채봉 문학테마길이 소박하게 조성돼 있다. 그 밖에 유당공원, 광양향교, 광양장도박물관 등 그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날의 고뇌와 순수한 우정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문학의 산실이다.
550리를 달려온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광양 망덕포구에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품어 빛을 보게 한 가옥이 있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으로 불리는 이 가옥은 1925년 양조장과 주택을 겸해 지어진 건축물로 윤동주의 유고를 보존한 가치가 인정돼 200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윤동주의 연희전문 후배 정병욱은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 형’에서 “내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린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전 세계가 전쟁의 늪에 빠져든 1941년 겨울, 연희전문 졸업을 앞둔 윤동주는 지금까지 쓴 시 노트를 꺼내 졸업 기념 시집에 넣을 시들을 정리했다. 그중 열여덟 편의 시를 고르고 서시를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3부를 엮어 한 부는 자신이 갖고 한 부는 이양하 지도교수에게 주었다. 나머지 한 부는 연희전문 2년 후배로 나이는 다섯 살 어리지만 진중하고 성미가 비슷해 함께 하숙을 지내는 등 각별하게 의지 삼은 정병욱에게 주었다. 정식 출판은 아니더라도 77부를 찍어 가까운 벗들과 돌려보고픈 윤동주의 소박한 바람을 시대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으로 유학 간 윤동주는 독립운동 혐의로 투옥돼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차디찬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병욱은 학도병으로 끌려가면서도 윤동주에게 받은 시집을 광양의 어머니께 잘 보관해 줄 것을 당부했다. 명주보자기에 곱게 싸인 시고는 망덕포구 가옥 마루 밑 항아리 속에서 고이 살아남았다. 윤동주와 이양하 교수가 갖고 있던 시고는 행방을 잃었지만, 광양의 정병욱 가옥에 꼭꼭 숨긴 시고는 1948년 1월, 마침내 시집으로 출간돼 윤동주를 시인으로 소환했다. 그 후 정병욱은 연희전문을 거쳐 1948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 연세대 교수를 거쳐 27년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고전시가, 고전소설 등 고전문학의 초석을 놓고, 국어국문학회를 창립했으며, 판소리학회를 창립, 판소리 연구 및 대중화에 힘쓰는 한편, 한문학, 서지학에까지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아울러 하버드대와 파리대학 초빙교수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문학 부문을 집필했으며 미국, 프랑스 등 각종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였다. 정병욱은 생전에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 외솔상, 삼일문화상을 받고 고전시가 연구에 일생을 바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에 추서됐음에도 윤동주의 시를 세상에 알린 일을 가장 큰 보람으로 꼽았으며 동주의 시 ‘흰 그림자’를 자신의 호 백영(白影)의 모티프로 삼았다.
1940년 4월, 연희전문 문과 3학년이었던 동주가 병욱의 글이 실린 그날 아침의 조선일보 한 장을 손에 쥐고 1학년 병욱을 찾아온 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신입생이었던 병욱은 동주에게 물어보고야 책을 샀고 시골 동생들의 선물조차도 그가 골라주는 걸 사는 등 모든 생활의 대중을 그로 말미암아 다져 갔다고 고백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몇 달, 몇 주일을 마음속에서 가다듬는 동주는 시를 원고지 위에서 고치는 일 없이 마음속에서 완성한 시를 날짜와 함께 비로소 원고지에 기록했다. 그런 그가 ‘별 헤는 밤’에 “어쩐지 끝이 좀 허한 느낌이 드네요”라는 병욱의 말에 “지난번 정형이 끝부분이 허하다고 하셨지요?”라며 덧붙인 것은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였다.
정병욱은 ‘오늘의 나에게 문학을 이해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인생의 참된 뜻을 아는 어떤 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동주가 심어 준 씨앗임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면서 기꺼이 동주의 그림자, 백영을 자처했다. 훗날 윤동주의 남동생과 정병욱의 여동생이 결혼함으로써 인연의 결실을 맺었고 정병욱의 차남 정학성 교수와 윤동주 시인의 장조카 윤인석 교수는 매월 가옥을 찾아 깊이 있고 진정성 넘치는 해설로 방문객들에게 큰 감동을 안기고 있다. 망덕포구 일대에는 정병욱 가옥을 중심으로 윤동주 시 정원, 별헤는다리 등 윤동주의 섬세한 감성과 정병욱의 깊은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가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김성수 관광과장은 “12월이지만 늦게 온 단풍이 찬란한 늦가을, 광양향교, 유당공원, 망덕포구 등을 거닐며 이균영과 정채봉, 윤동주와 정병욱의 따스한 우정과 풍부한 감수성을 느껴보는 광양 인문학 산책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균영과 정채봉, 윤동주와 정병욱…그 애틋한 스토리를 찾아 광양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글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4년 12월 10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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