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를 달리다 ‘증도 자전거 여행’, 국내여행,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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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신안군 지역호감도

슬로시티를 달리다 ‘증도 자전거 여행’


목포에서 서북쪽으로 33km, 지도읍에서 다시 남쪽으로 12km 지점에 있는 섬. 사옥도, 병풍도, 암태도 등과 벗하며 서해 위에 떠 있는 ‘증도’는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외지 사람은 자주 드나들지 않던 외딴섬이었다. 접근성이 취약해 자연히 개발 열풍을 피했고, 그 덕에 세상이 쉼 없이 변하는 중에도 옛 정취와 자연환경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 지난 2007년 청산도와 함께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선정되었으며, 2010년 연륙교인 증도대교가 놓인 이래로 꾸준히 방문객이 늘고 있다.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곳

  •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증도'는 지난 2007년 '슬로시티'로 지정되며 명성을 얻었다.

연륙교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증도에 가려면 목포에서 배를 타고 꼬박 3시간 이상을 가야 했다. 연륙교가 놓이며 다행히 그 시간이 절반으로 줄긴 했지만, 여전히 증도는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섬이다. 가까이에 있는 지도여객자동차터미널에서 증도로 가는 공용버스가 운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편수가 많지 않다 보니 한 번 놓치면 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증도를 찾는 많은 사람은 오히려 자동차를 두고 오는 쪽을 택한다.
 
증도는 ‘슬로시티’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은 빠른 속도와 생산성만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벗어나, 자연과 환경,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 여유롭게 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이후 범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슬로시티 국제 연맹을 두게 됐다. 슬로시티가 되기 위한 조건은 제법 까다로운데, 증도는 이들이 정한 24개 항목을 모두 통과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슬로시티에 선정되었다.
 
슬로시티가 되기 위해서는 인구가 5만 명 이하여야 하고,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된 상태여야 하며,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전통문화와 산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대형마트와 패스트푸드 전문점은 없어야 한다. 증도는 인구 2천여 명이 사는 작은 섬으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람사르습지 등으로 등록된 천혜의 갯벌과 드넓은 염전을 간직하고 있다. 누가 봐도 ‘슬로시티’ 그 자체다. 

 

짱뚱어 다리 지나 자전거 대여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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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짱뚱어다리 인근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의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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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용부터 어른용, 바구니가 있는 것부터 없는 것까지 다양한 자전거가 준비돼 있다.

증도에서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곳으로는 태평염전과 짱뚱어다리 인근의 자전거대여소, 그리고 우전리에 위치한 엘도라도 리조트가 있다. 다만 비수기 때는 더러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연락을 취해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필자가 증도를 찾은 건 비수기인 3월 초. 자전거를 빌리기 위해 짱뚱어다리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를 관리하고 있다는 관리소장에 전화를 걸었다. 9시 반에 문을 여니 그쯤 들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솔무등공원에서 우전해수욕장 방향으로 짱뚱어다리를 건너면 바로 왼편으로 허름한 컨테이너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외관만 봐서는 어느 액션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자태다. 제대로 된 간판도 하나 없고 표지도 허술하기 짝이 없어 긴가민가하겠지만, 바로 그 건물이 당신이 찾고 있는 자전거 대여소가 맞다. 입구에 다가서니 안쪽에서 구수한 트로트 가락이 들려온다.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바깥에선 하나도 보이지 않던 자전거가 모두 그 안에 숨어 있었다. 물론 트로트를 좋아하는 관리소장님도 함께.
 

  • 하루를 함께 하게 된 자전거. 자전거는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대여할 수 있다.

튼튼하고 성능 좋은 자전거 한 대를 추천받아 끌고 나왔다. ‘차 없는 섬’을 표방하는 증도에는 비교적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돼 있고, 자전거 도로가 없는 구역도 차가 많지 않아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특별히 정해진 코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증도를 일주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전거 대여소가 있는 짱뚱어다리에서부터 우전, 장고, 덕정 마을을 지나 다시 태평염전이 있는 대초, 곡도, 광암 등을 거쳐 증동리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한다.  

 

짱뚱어다리~우전~장고~덕정

  • 자전거대여소에서 약 4km 남짓 달리면, 우전해변이 한눈에 보이는 엘도라도리조트에 닿는다.

짱뚱어다리에서 해송 숲을 따라 4km 남짓 달리면 신안갯벌센터.슬로시티센터와  엘도라도리조트가 있는 우전리에 도착한다. 우전리는 과거 기러기 떼가 겨울을 나고 간다 하여 ‘깃밭’이라 불리다가, 마을 지형이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기러기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우전(羽田)’이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다. 우전에는 동명의 해수욕장이 있는데, 곱고 하얀 백사장과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갯벌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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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벌에 정박해 있는 고깃배. 증도의 어민들은 '물때'에 맞춰 작업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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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기척이 나자 짖기 시작하는 장고마을의 개.

우전에서 장고마을로 넘어가 보자. 장고는 본래 길게 뻗은 지형 때문에 진구지(긴 간척지)라 불리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때 제방을 막으면서 농지가 많아져 장차 곡창지대가 될 것이라는 뜻으로 ‘장고(長庫)’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장고마을은 겨울철 ‘해풍 건정’으로 유명한데, ‘해풍 건정’이란 바닷바람에 말린 건어물을 뜻하는 이 지역 방언이다. 제철에 잡은 민어, 숭어, 우럭 등의 내장을 꺼내 나무 꼬챙이에 끼워 약 한 달여 간 말리는 방식이다.
 
장고마을을 지나면 다음은 덕정마을이 나타난다. 덕정마을은 과거 증도에 물이 귀했을 때, 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큰 솥으로 막아준다는 뜻을 담아 ‘덕정(德鼎)’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마을이다. 행정구역상 대초 2리에 속하지만, 섬사람들에게는 덕정이라는 이름이 더욱 친숙하다. 덕정마을은 1.2km 노두길과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로 유명한 ‘화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대초~태평염전~광암~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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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염전 가는 길. 길가에 목조 소금 창고가 줄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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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염전인 태평염전 전경. 소금 채취는 3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조금 더 긴 여정을 원하는 이라면 덕정마을에서 화도 쪽으로 방향을 틀고, 크게 무리하고 싶지 않은 이라면 태평염전이 있는 대초마을로 향할 것. 대초마을은 마을에 대추나무가 많고 잘 자란다고 하여 대추동, 대치동 등으로 불리다가, 1910년대 일본이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대초(大棗)’라는 이름으로 굳혀졌다. 대초마을을 지나 태양광발전소를 지나면, 이윽고 여의도 2배 크기의 염전이 두 눈앞에 나타난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을 막아 만든 태평염전은 단일염전으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60여 개의 소금밭과 목조 소금창고 수십 채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인근에 소금박물관을 비롯한 태평염생식물원, 소금밭 낙조전망대와 소금가게, 솔트레스토랑, 소금동굴힐링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잠시 쉬었다 가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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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암마을 인근 풍경. '천사의 섬 신안'이라는 문구와 함께 튤립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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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로운 증동리 일대의 풍경.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기분이다.

태평염전을 충분히 만끽했다면 이제 다시 바람을 가르며 달릴 차례. 이번엔 광암마을로 향한다. 광암마을은 옛날에 어느 착한 효자가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뒤 움막을 치고 살았다고 하여 ‘효막동’이라 불리다가 광무 6년, 지도면장이 들이 넓고 바위가 많다 하여 ‘광암(廣岩)’이라 이름 붙이면서 지금의 광암마을이 되었다. 과거 나루터가 있어, 증도를 오고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곳이다.
 
광암마을을 지나면 증동, 증서, 증북마을이 모여 있는 증동리까지 일직선으로 달릴 수 있는 길이 펼쳐진다. 증동리는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 등 편의시설이 모여 있는 증도 최대의 번화가. 말이 번화가지, 실상은 작고 소박한 시골의 풍경을 품고 있다. 볼거리를 충분히 즐기면서 쉬엄쉬엄 달려도 반나절 정도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아름다운 증도의 매력에 푹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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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8년 04월 11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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