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봄’에서 시작된 백사의 산수유
이 이야기는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 언저리의 어느 지점부터 시작된다. 난을 피해 고향인 이천으로 돌아온 이가 있었으니, 남당 엄용순이라는 인물이었다. 남당은 지금의 백사면 한 귀퉁이에 정자 하나를 건립하였는데, 남당, 그리고 남당과 친우 관계였던 다섯 선비가 이 정자 귀퉁이에 여섯 그루의 나무를 심었으니 이 정자의 이름을 ‘육괴정’이라 하였다. 선비들은 육괴정을 중심으로 산수유를 심어 나갔고, 여섯 선비의 손길이 닿은 산수유가 아직까지 백사면 일대를 밝히고 있다.
선비의 봄을 상상하라
이천시 백사면 일대는 이른 봄부터 산수유의 노란 꽃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추위에 강하나 공해에는 약한 꽃나무, 산수유. 차고 모진 겨울을 견딘 끝에 진달래나 개나리, 벚꽃보다도 먼저 꽃망울을 틔우지만 깨끗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시들어버리고 마니, 이 또한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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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함께 산수유를 심었던 선비들의 마음이 원적산 기슭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일까, 이곳의 산수유는 유독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백사골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스무 개 남짓의 작은 꽃송이들이 동그랗게 모여 봄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서당에 모여 앉아 글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까지를 상상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육괴정 앞을 서성이며 선비의 봄을 상상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북이며 장구를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수유 농악단’의 길놀이 및 풍년 기원제가 시작된 것. 바야흐로 봄이다. 먼 옛날 여섯 선비가 보고자 했던 노란 봄이 올해에도 밀려 온 것이다.
산수유 꽃길 따라
이천백사산수유축제는 도립리, 경사리, 송말리의 세 개 마을에 걸쳐진 산수유 군락지에서 4월 중 이루어진다.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산수유나무는 약 1만 7천여 그루. 심은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무에서부터 여섯 선비가 심었을 법한 500여 년 수령의 고목까지가 이 백사골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다소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이천백사산수유축제에서는 산수유와 관련된 여러가지 체험 행사들이 준비되어 있다. 이를테면 산수유 빵이나 산수유 비누 만들기와 같은 것. 산수유가 들어간 막걸리나 한과, 가래떡을 먹어볼 수도 있고 투호나 그네와 같은 전통 놀이를 즐겨 볼 수도 있다.
산수유 가득한 돌담길을 걷다 보면 마음속까지 봄이 스며 온다.
북적이는 백사골 일대를 걷는 동안 자꾸만 노란 빛이 눈길을 잡아끈다. 잎보다 먼저 고개를 내민 산수유 꽃망울은 물론이고, 꽃길을 따라 장식된 것들 또한 모두 노란 빛이다. 이 명랑한 봄의 빛깔에 마음이 설렌다면 곁에 선 이의 손을 슬그머니 잡고 돌담길을 따라 걸어 보자. 산수유가 꽃그늘이 아름다운 이 길의 이름은 ‘연인의 길’. 육괴정부터 축제장을 거쳐 바람골까지를 다녀올 수 있는 이 길을 걷고 있노라면 마음속까지 조금씩, 봄이 스민다.
백사골, 산수유, 그리고
이천이라는 고장은 선비의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그러니 되도록 오래도록, 선비처럼 여유 넘치는 걸음으로 이천을 지긋이 둘러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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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축제장의 주차장 인근에서는 반룡송을 놓치지 말 것.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한 이 나무는 용의 비늘을 닮은 붉은 색의 표피와 용이 꿈틀대는 것 같은 신비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산수유 마을이 자리한 원적산 기슭을 오르다 보면 8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숨 쉬는 천 년 고찰인 영원사를 만날 수 있기도 하다.
이천시의 곳곳에는 도예 공방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흙의 소박하고도 따뜻한 기운을 맨손으로 느껴보는 것도 좋겠고, 뜻밖의 추가 여정에 배가 고파졌다면 이천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한정식을 맛보는 것도 좋겠다. 고즈넉한, 가슴 따뜻한, 신비로운. 산수유와 함께 한 이천에서의 추억에 대한 수식어를 하나씩 불려가는 동안 가을의 산수유 열매를 구경하러 다시 오겠노라는 다짐을 할 수밖에 없어질지도 모른다.
옛 이야기 한 구절이 있어 더욱 흥미로운 이천으로의 산수유 여행! 트래블피플의 기억 속에는 이천 백사 산수유 축제가 어떤 수식어로 남게 될지 궁금한데요?
글 트래블투데이 이승혜 취재기자
발행2016년 03월 13 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