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시간이 흐르는 세 개의 공간 - 안국역, 종각역, 종로3가역, 국내여행,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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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시간이 흐르는 세 개의 공간 - 안국역, 종각역, 종로3가역


서울 종로구 낙원, 인사, 관훈동 일대는 타임머신 같은 동네다. 종각-안국-종로3가, 지하철 역 3개로 만들어지는 삼각지 속에 어제, 오늘, 내일의 삼 세대가 혼재한다. 남녀노소,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사랑하는 전통 문화의 거리 인사동 길도 수십 년 전 모습은 물론, 당장 하루하루가 다르다. 변화에 몸을 맡긴 사람들과 쓸려가지 않으려는 이, 변화를 기다리는 이들까지 오랜 시간 인사동 낙원동에 흐른 물길의 자취를 따라 오늘날 전통의 삼각지가 있기까지의 세월을 짚어봤다. 이는 역시 시간의 공식으로 설명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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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지도 앱을 켜고 종각-안국-종로3가역을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을 그린다. 각 변이 600m 정도 되는 삼각형 땅이 나온다. 이제부터 전통의 삼각지라 칭할 낙원, 인사, 관훈동 일대다. 이 삼각지를 걷다 보면, 일단 유동인구의 연령층이 참 넓다고 느낀다. 아침 시간엔 인사동 문화의 거리는 아직 조용한 반면, 낙원동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쪽 대로는 연세 지긋한 어른들의 하루가 시작된 지 한참이다. 오래된 가게일수록 일찍 문을 연다.
 

 

번성했던 자리, 남아있는 삶

 

 지금은 인사동 문화의 거리로 중심이 옮겨 갔지만, 본래 이 삼각지의 중심은 낙원 상가 쪽에 있었다. 탑골공원에서 운현궁, 북촌으로 뚫린 삼일대로 변, 지금은 큰 호텔이 들어선 자리가 ‘낙원동 떡전골목’이다. 조선 시대 궁에서 떡을 만들던 기술이 전해져 한국 전쟁 전후로 창덕궁, 창경궁 주변인 이곳에 떡집들이 모였다. 지금도 열 곳 정도가 자리를 옮겨 영업하고 있다. 20년 전, 명절 때마다 줄을 서고 떡을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던 명성은 사라졌지만, 많게는 90년, 적어도 3, 40년씩 뼈가 굵은 전통을 가진 떡집들은 낙원동 떡집의 명맥을 이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역 불문하고 흔한 가게 이름, ‘낙원 떡집’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답이 여기서 나온다.

 
  • 종로 삼일대로 위에 지어진 주상복합 1세대 낙원빌딩

 

떡집이 군데군데 흩어져있는 삼일대로 중심에 있는 낙원 상가는 국내 최대의 악기 상가로 꽤 유명한 건물이다. 개중에는 이렇게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1층이 도로인 이 독특한 건물은 사실 종로 세운상가에 이어 1967년 착공한 한국 두 번째 주상복합 1세대다. 이는 당시 낙원동 일대가 얼마나 번성했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로, 1969년 6월 14일 매일경제는 ‘아파트’와 상가로 겸용될 15층의 ‘매머드’ 낙원빌딩이 완공단계에 있다'며, 거대한 것을 일컫는 ‘매머드’라는 표현을 빌려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빌딩 지하에는 노점 형태로 있던 낙원시장이 입점해 대규모 시장이 됐다. 낙원 상가아파트뿐만 아니라 종로 일대 주민들의 소위 ‘쇼핑 중심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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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공 당시의 '낙원삘딍' 명패가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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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종로의 쇼핑 중심이었던 낙원시장의 현재 모습.
 

그렇게 번창했던 곳이지만, 지금 낙원 상가는 낙후된 모습이다. 악기 상가는 그나마 개발의 손길이 닿는다고 쳐도, 젊은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르기 일쑤인 낙원 시장엔 옛 건물, 옛사람만이 그대로 남아있다. 왕년의 활기만이 사라지고 없다. 그래도 군데군데 문 닫은 점포 옆 수입제품과 그릇 가게, 드문드문 채소, 생선, 방앗간 집은 여유롭게 제구실을 하며 언젠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리는 눈치다. 15년 전부터 백반 장사를 시작한 ‘일미식당’은 근래 한 방송에서 맛과 청결을 인정받아 유일하게 줄을 서는 가게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믿을만한 물건을 찾는 오랜 단골, 알음알음 들어 아는 사람들이 온다.
 

 

어제를 잇는 오늘의 문화지구

 

전통의 삼각지에 옛 모습이 쓸려 내려가고 남은 자리는 조금 서글픈 표정을 하고 있음에도, 수많은 걸음이 오가며 단단하게 다진 땅은 여전하다. 오늘날 인사동 문화의 거리는 90년대 서울시 전통문화 사업을 시작으로 2002년 제1호 문화지구로 지정된 오늘날 대표적인 전통문화 관광지. 그전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거리에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골동품상점이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싼 임대료 때문에 충무로와 명동의 고미술품, 문화재 가게들도 옮겨왔단다. 이후 1960년대 낙원동 일대가 번성하자 화랑, 필방, 표구점 등 전통 미술 관련 상권이 형성됐고, 전시장도 생겼다. 따라서 화가, 시인 등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된 것도, 전통 찻집과 음식점이 생긴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 정부에서 이를 장려해 1988년 공식 ‘전통문화의 거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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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사거리에는 필방과 화랑이 모여있는 골목이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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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신당 필방은 시아버지의 뜻을 이어 며느리가 28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때의 화랑과 필방, 표구점은 삼삼오오 모여 남아 있다. 전보다는 문을 많이 닫았지만, 2,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이 거리 터줏대감 같은 가게들은 겉모습부터 깊이를 풍긴다. 그중 큰 인사동 길에 위치한 명신당은 전각을 조각하는 주인이 시부로부터 이어온 필방을 28년 째 운영하고 있다. 진귀한 물건으로 가득한 가게는 오랜 세월보단 연륜에서 오는 여유가 느껴진다. 우리 글씨와 그림에 필요한 각종 문방사우와 더불어 실용성을 넘어선 정교함으로 선물하기에도 좋은 전각과 붓 등을 갖추고 있다. 명신당 옆 통인가게는 통인동에서 1924년 시작해 이리로 옮겨온 전통 갤러리로 한 건물 전체를 상설 전시, 공예품, 도자기, 가구, 고미술품 등의 구역으로 나눠 층마다 갖추고 있다. 또 문화 강연,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복합공간으로서 오늘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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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작은 골목에는 보물 같은 전통 찻집들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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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옛찻집'은 30년이 넘은 찻물의 깊이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자리는 응당 물 좋고 산 좋은 곳. 인사동은 이름난 찻집이 많기로 유명하다. 역시 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아직 인사동에는 그 시절 풍류를 읊던 이들을 기억하는 찻집이 번듯하게 남아 운영되고 있다. 古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 운영해 당시 문인들이 보금자리 격이었던 ‘귀천(歸天)’은 내외 모두 별세 후 분점 하나만 문을 열고 있다. 최대한 많은 자리를 만들어 시끌벅적한 커피숍과는 달리 조용하고 아늑한 내부가 특징이며, 직접 담가 숙성시키는 차와 손님, 주인이 정답게 어울린다. 쌈지길 앞 깊숙한 골목에 위치한 ‘신 옛찻집’도 마찬가지다. 여느 시골집 같은 가게는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30년간 끓여낸 찻물에는 손맛과 세월이 배어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 중에도 숨겨놓은 보물 찾듯 오는 단골이 많다.
 

 

새로이 쌓이는 전통의 모습들

   
  • 2002년 문화지구로 지정된 인사동은 이제 꽤 변화에 익숙한 모습.

시간 가듯 전통도 멈추지 않고 흐른다. 그 때문에 삼각지에는 켜켜이 쌓인 전통이 어제의 것 같으나 사뭇 어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다. 번성한 인사동 길에는 커피숍, 화장품, 제과점 등 외국계 가게들이 한글 표기한 간판을 내걸어 눈길을 사로잡고 값싸고 앙증맞은 공예품들이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든다. 옛 모습을 간직하는 골동품상, 고서점, 화랑, 필방 중에는 관광객 입맛에 맞는 한류 기념품,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팔기 시작한 곳도 적지 않다. 호떡, 실과자, 문어 꼬치 등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도 인기다. 이를 보고 어떤 이들은 혀를 찬다. 옛 모습을 잃어가는 것이 씁쓸하다고. 실제로 서울시에서는 현 인사동 상권이 지나치게 상업화에 치우쳐 전통 색을 잃어가는 문제로 일부 길거리 점포에 업종을 바꿀 것을 통보한 상태다.

요즘은 인사동도 제2의 명동, 동대문이 되고 말 것이라는 염려의 목소리가 높다. 평일 낮 주말을 방불케 할 만큼 북적이는 인사동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은 서울의 다른 어느 곳보다 전통적인 분위기를 즐겼다고 만족스러워했지만, 이곳마저도 관광객 위주의 장소(Touristy place)처럼 보여 아쉽다는 의견에도 입을 모았다. 또한, 그들 중 다수가 이 동네가 지닌 전통적인 특성, 오래된 예술가들의 거리 혹은 전통차를 즐기기에 좋은 점, 전통 미술품을 접하기 좋다는 점 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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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쌈지길에 이어 인사동 복합공간 마루에도 젊은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예술품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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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다양한 길거리 간식들이 구경을 더 즐겁게 한다.
 

하지만 다행히 오랜 시간 물살 아래 단단해진 땅만큼, 전통의 뿌리는깊다. 게다가 꿋꿋이 자리에서 전통을 지키는 오래된 가게들과 새롭게 들어와 전통을 위협하는 듯 보였던 현대식 가게들이 어느새 한 풍경으로 뭉쳐지는 모습은 신기할 따름이다. 떡전골목의 한 떡집이 어머니의 전통, 딸의 젊은 감각을 더해 떡카페로 거듭난 것은 이 삼각지의 오랜 퇴적 작용을 축약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쌈지길과 마루 등 젊은 공예가들이 인사동에 많은 것도 30년 전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이 거리로 들어온 화랑과 필방, 예술가들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이 흐른 만큼 그 방식이, 모양이 조금 다른 것은 당연하다 쳐도 말이다. 종이컵에 담긴 호떡을 들고 사진 찍는 외국인들, 손에 하나씩 조그만 필통, 주머니 등 자수 공예품을 사 들고 귀가하는 어린 소녀들을 보면 전과 아주 똑같지는 않아도 사람들는 나름대로 잘 즐기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 단단한 전통을 위해

 

늘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모습이었을 것 같은 낙원, 인사, 관훈동 일대도 이처럼 다른 지역 못지않은 변화의 중심이었다. 따라서 잠시 조금 낡아있는 부분, 새로 들여와 아직 윤기가 가시지 않은 부분, 이 모든 것이 섞인 부분이 혼재한다. 토질이 달라 어우러지지 않는 듯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전통의 삼각지에 누군가는 돈을 벌려고, 누군가는 예술의 꿈을 실현하러 들어왔다 해도 결국은 같은 정신을 공유한다.
 
4대째 가게를 이어 온 떡집, 낮부터 막걸리를 나누는 노인들의 쉼터가 있는 낙원동에는 호기심 가득한 젊은이들이 찾아온다. 인사동 길에는 돈이 되지 않아도 한번씩 찾아오는 오랜 손님을 위해 명맥을 잇는 화랑과 필방, 관광객의 손에 들려 바다를 건널 값싼 수공예품들, 장인의 땀이 깃들어 액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전통 미술품들이 어울려 산다. 구석진 옛 찻집에 나이 많은 차와 주전자는 지팡이 아이스크림, 여전히 줄 서는 호떡집, 일단 눈에 띄는 화려한 가게처럼 연고를 알 수 없는 구석도 받아들여 하나가 된다. 원래 삼각지란 새로운 것과 섞여 더 단단한 땅을 이뤄야 하는 변화의 지대. 전통도 마찬가지다.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가장 좋은 것일 리 없듯, 오래된 것도 뿌리 안에서 새로움을 입고 더 많은 이들이 즐길만한 전통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맞다.
 
전통의 삼각지는 앞으로도 자꾸 변할 것이다. 사라지는 것도 또 기상천외한 새 모습도 보게 될 테지만, 변한다는 이유로 덮어두고 혀를 차지만 말고 엎치락뒤치락 더 단단한 땅을 만들어가는 그 모습을 우리는 지켜 돌보고 자주 찾아 기꺼이 즐기면 될 일이다. 걱정과 달리 그 땅은 여전히 건재하다.
 

 
  • 전통이 흘러가는 삼각지는 언제나처럼 변화를 거듭하며 더 단단해질 것이다. 

 

1. 오후에는 늘 북적이는 인사동 길, 오래된 가게들은 아침부터 문을 열기 때문에 일찍 들러 한적하게 구경하면 좋다.
2. 인사동 쌈지길 맞은편 길 안에 한복 체험을 할 수 있는 인사동 홍보관이 있다.
3. 낙원동 오래된 시장과 식당 골목을 돌아보자. 고급스럽진 않아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옛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
4. 인사동 길에서는 일부러라도 조금 덜 세련된 곳을 찾자. 전통 찻집, 한식집, 필방. 어디든 시간의 냄새가 나는 곳이 진짜다.
5. 오후엔 북적임을 따라 즐길 차례. 마루, 쌈지길, 길거리 간식 등 젊은 감각이 만드는 내일의 전통을 가늠해 볼 수 있다.
 

1967년 완공된 주상복합 1세대 낙원빌딩의 머릿돌이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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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년 완공된 주상복합 1세대 낙원빌딩의 머릿돌이 아직 남아있다.
  • 낙원, 인사동 전통의 삼각지 통로 격인 삼일대로
  • 낙원상가에 위치한 실버영화관 모습
  • 전통 문화의 거리 인사동 길 초입의 남인사마당
  • 인사동 홍보관에서는 관련 자료및 한복 체험도 가능하다.
  • 인사동 북인사광장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조형물
  • 사진7: 인사동을 들어서는 지점에 규모와 상호명이 인상적인 기념품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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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전통이 흘러온 길은 어떤 말을 하는지 전통의 삼각지 곳곳을 돌아다녀보면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트래블투데이 황은비 취재기자

발행2015년 02월 03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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