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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경주교동 최씨고택


역사와 문화의 수도 경북 경주. 도시 전역이 문화재로 가득한 시가지 남쪽에 교촌 한옥마을이 있다. 신라 시대 한반도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세워진 이후, 고려 시대 향학, 조선 시대 향교로 이어져 왔기 때문에 마을을 교동, 교리, 교촌이라고 불렀다. 마을 주변에는 첨성대, 월성 등 신라 유적이 고루 분포해 있어 신라 문화 속 옛 모습을 간직한 조선 문화 마을이라는 게 특이하다. 교촌이 유명해진 것은 향교뿐 아니라 최씨고택이 있기 때문. 최부자집 혹은 최진사댁으로도 불리는 이 가문의 이야기는 들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으로 치켜세우니 금세 호기심이 발동한다. 대체 어떤 사연인지 경주교동 최씨고택 대문을 열어보자.

                    
                

사람들이 최씨고택을 많이 찾는 까닭은 양반댁 종가의 아름다운 건축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을 보여준 최부자 가문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 많이 높지 않아 겸손하고 어진 분위기의 최부잣집 솟을대문

경주 교촌마을 남천이 흐르는 자리 옆으로 양지바른 땅에 1700년경 지금의 최 씨 고택이 지어졌다. 이 터는 원효대사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은 신라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있었던 자리로 전해지기도 한다. 건축 당시 향교 유림의 반대가 심하여 향교보다 두 계단 낮게, 솟을대문도 수수하고 나지막하게 지었다.  

경주교동 최씨고택은 400년간 12대 동안 만석 지기 재산을 지키고 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한 명문가. 1대 최진립이 시조로 본래 경주 내남면 개무덤이라는 곳에서 약 200년을 살다가 7대 최언경 때에 교동에 정착한 후 다시 200여 년을 더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또한 그 규모는 약 2,000여 평이고 후원이 약 10,000평이었으며 하인은 약 1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가문은 대대로 근검절약을 근본으로 삼으며 가난한 이를 푸대접하지 않고 지나치게 부를 축적하는 데에만 힘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여러 민란이 있어도 화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1671년 현종 당시 삼남지방에 큰 흉년이 들었는데 경주 최 부자 최국의 집 마당에 큰 가마솥이 걸렸다. 최국의 명으로 곳간을 연 것이다. 그는 “모두가 굶주리는데 나만 재물을 가지고 있어 무엇 하겠는가. 모든 굶는 이에게 죽을 끓여 먹이게 하고 옷을 지어 입히게 하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최국은 흉년이 들자 “흉년이 들면 돈을 갚을 사람이면 이런 담보가 없어도 갚을 것이고 못 갚을 사람이면 이런 담보가 있어도 당연히 못 갚을 것이다. 이런 담보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겠느냐. 땅이나 집문서는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우라”라고 말하며 자신의 재물을 나눔에 아낌이 없었다. 경주교동 최씨고택에서 전하는 가르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최부자집의 6가지 가훈이다.
 

최부잣집 육훈(六訓)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 것: 권력에 욕심내고 휘둘리지 말란 의미
2.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말 것: 재산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
3. 과객을 후하게 대접할 것: 외부인과 소통하고 대접하라는 의미
4.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 것: 남의 불행 중 행복을 꾀하지 말라는 의미
5.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을 것: 검소함을 몸에 배게 하라는 의미
6.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할 것: 남을 부족함 없이 도우라는 의미
 

뺄 것 하나 없이 모두 소금처럼 귀한 원칙이 아닐 수 없다. 마을의 모든 이들과 상생하기 위해 나누고 베푸는 마음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또한, 12대에 걸쳐 육훈을 성실하게 지켰기 때문에 최 씨 가문은 조선 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욕먹지 않는 부자’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도 마지막 ‘최 부자’인 최준은 독립운동에 참여해 독립 자금을 댔으며, 해방을 맞고 나서는 전 재산을 투자해 지금의 영남 대학교인 대구대학교와 계림학숙을 세웠다. 400년간의 나눔과 공생으로 이룬 부를 마지막까지 사회에 환원한 이 가문을 두고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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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부잣집의 트인 'ㅁ'자 형 안채와 마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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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최부잣집의 고방채(곳간), 늠름함이 느껴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깃든 최씨고택은 원래 99칸으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는데 1970년에 사랑채와 별당이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주춧돌만 남아 있다. 현재 가옥은 170여 년 전의 건축으로 평면구조가 경상도 지방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건물 재목들도 일반가옥에서는 보기 어려운 좋은 재목을 썼다. 건축물 자체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날 뿐 아니라 넓은 마당과 고방채는 매우 눈여겨 볼만하다.

곡식을 보관한 곳간창고인 뒤주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쌀 800석을 보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뒤주가 여러 채 있었지만 현재는 1채만 남아있다. 400년간 만석지기 재산을 품고 있었을 커다란 이 곳간창고는 중요 민속자료로도 지정되어 있으며, 최씨 가문의 생활과 법도, 즉 재산 관리와도 관계되어 건축학적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문간채와 사랑채 사이를 비롯해 곳곳에 수수하게 꾸며진 정원과 석재가 부잣집의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 평면 구성의 트인 안채는 'ㅁ'자형이나 실제로는 'ㄷ'자 구조며 'ㄱ'자형 사랑채와 '一'자형 중문채가 어울려 있어, 이들 건물 사이를 잇는 문과 담장도 의미 있는 볼거리가 된다. 특히, 안채의 서북쪽으로 별도로 마련한 가묘가 있는데 남쪽으로 난 반듯한 길이 인상적이다. 안채 뒤편에는 꽃밭이 잘 조성되어 있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최씨고택은 조선 시대 양반집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아 온 경주교동 최씨고택. 교촌마을 최부자집에서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찾아보며 나눔과 베풂의 정신이 깃든 최부잣집 육훈을 읊어 보는 것은 어떨까.

 

*주변 관광지

 

불국사·석굴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석굴암은 토함산 중턱에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본존불인 석가여래 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을 조각했다.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
신라 천 년의 고도(古都)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불교유적, 왕릉이 잘 보존되어 있다. 유적의 성격에 따라 5개 지구로 나뉘어 있으며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 년 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태종무열왕릉
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 신라 29대(재위 654~661) 태종무열왕릉으로 경주 북서쪽의 선도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에 있다. 머릿돌에는 좌우에 3룡식(三龍式) 6룡이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지만 비의 몸체가 없어져 내용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남아있는 받침돌과 머릿돌만으로도 걸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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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6년 02월 16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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