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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원도심 근대역사 골목투어


부산을 일컬어 대한민국 제2의 수도라 한다. 그만큼 부산이 우리나라 역사‧문화에서 갖는 의의는 크다 할 것이다. 이는 비단 부산이 광역시이자, 서울과 경기의 뒤를 잇는 인구 350만 명(‘14년 8월 기준)의 거대 도시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항구도시인 부산은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쳐 요란한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광풍(狂風) 지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흔적은 세월이 지나도 고스란히 부산에 남아 있다. 힐링이 대세인 요즘, 부산은 많은 이들에게 휴양 또는 힐링의 장소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과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또한 조금 더 미래지향적인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는 이라면 부산의 원도심에 남은 근현대사의 흔적을 둘러보는 데 단 하루의 시간쯤 내어주는 것이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부산에 ‘무풍지대’는 없었다

격렬함의 반의어는 약함일까, 부재(不在)일까. 일제가 갖은 획책으로 조선을 강점했을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도시 중 하나가 부산이다. 어쩌면 서울보다도 더 많은, 더 심한 짓밟힘을 당한 곳이 바로 부산이다. 이는 부산이 일본과 가깝고, 따라서 조선의 물산을 ‘빼내기’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침략의 목적이 대상을 빼앗는 데 있음은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
 

  • 일제강점기 '용두산 신사'가 있던 부산 용두산 공원에는 현재 이순신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사랑의 자물쇠’가 즐비한 곳이지만, 한때는 우리 조상들이 자존심을 굽혀 가며 고개를 숙였던 곳이 있다. 바로 부산 용두산 공원(부산 중구)이다. 지금은 공원이 됐지만, 한때 용두산공원은 ‘용두산 신사’였다. 신사란 일본의 전쟁 영웅들에게 참배하는 곳으로, 오늘날 국제뉴스에서도 빈번히 이슈가 될 만큼 분쟁거리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 입장에서는 전쟁 영웅일지 몰라도, 다른 나라, 특히 한국처럼 일제강점을 당한 나라 입장에서 그들은 한낱 ‘전범’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립적인 용어는 ‘제신’이다.

용두산 신사는 총 9명의 제신에게 참배하던 곳인데, 이들은 일본 천황이나 한반도 강점에 공헌한 인물들 일색이었다고 하니 역사의 아픔이 새삼 느껴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곳은 역설적이게도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민족 수호의 의지가 느껴지고 있다.

 

광복이 되니, 6·25의 아픔이 찾아오고

부산에는 광복로, 광복동 등 유난히 ‘광복’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이는 부산이 그만큼 일제의 폭압과 떼려야 뗄 수 없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부산은 광복 이후에도 결코 역사의 광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광복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발발한 6·25전쟁 때문인데, 발발 직후 수도 서울이 북한군에 함락되자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서울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남쪽으로, 부산으로 피란했다. 말하자면 부산은 피란길에 오른 우리 국민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된 곳이다. 더 이상 밀려날 수 없는 곳, 더 이상 비켜날 수 없는 곳이 된 곳이 바로 부산이다.
 

  • 40계단은 부산 피란민들의 설움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전쟁의 상흔이 어딘들 비켜갔겠느냐만, 그중에서도 부산 ‘40계단’은 피란민들의 설움이 서린 곳이다. 이곳은 피란민뿐 아니라 부두 노동자들의 애끓는 사연이 얽힌 곳이기도 한데, 이는 ‘50계단’도 아니고 ‘100계단’도 아닌, 어쩌면 애매하다 할 수 있는 ‘40계단’이라는 이름에서 더욱 잘 느껴진다 할 수 있다. 계단 40개를 하릴없이 세어 오르며, 고단한 삶을 버티어 나갔을 그 옛날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은 오죽 고단했으랴. 매일 같은 계단을 오르며 그 얼마나 한스러움에 몸 떨었으랴. 지금의 40계단은 애초의 위치에서 남쪽으로 25m 옮겨 복원한 것이라 하니, 그 아픔이 온전히 전해지지야 않겠지만, 이는 아쉬워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변치 않았다는 건, 그 아픔이 지속됐을 것임을 역설적으로 나타냈을 테니.
 

  •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 전쟁 당시 작은 서점 한 곳으로 시작해, 지금은 서점 수십 곳이 운영 중이다

이처럼 6·25 전쟁의 아픔이 서린 곳은 부산 40계단뿐이 아니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진 곳인 보수동 책방골목이 바로 그곳인데, 이곳은 6·25 전쟁 때 피란 온 학생들이 채 억누르지 못한 학구열을 충족시키기 위해 발품 팔아 들르던 곳이다. 당시 월남한 손정린 씨 부부가 이 골목의 한 건물에 박스 등을 깔고 허름하게 시작한 책 노점상이 지금의 책방 골목으로 확장됐다고 하니, ‘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이 절로 떠오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전쟁 후인 1960~70년대에는 서점 총 70여 곳이 들어설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니, 전쟁과 가난도 꺼뜨리지 못한 한국인의 학구열에 가히 혀를 내두를 만하다.

부산의 역사가 여기에, '부산근대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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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근대역사관은 일제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쓰이던 건물을 역사관으로 보수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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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수도기념관은 6·25 전쟁 발발 직후 임시수도 기능을 했던 부산에서의 대통령 내외 생활을 재연한 곳이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부터 6·25에 이르기까지, 부산을 무대로 한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있다. 바로 부산 중구 소재 부산근대역사관이다. 이곳은 개항기 이후 부산의 근현대 역사를 한 자리에서 아우르고 있는데, 이 건물부터가 역사의 산실이다. 지금은 부산근대역사관이 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대명사인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산지점으로 사용됐던 건물이기 때문이다. 한때 지하 독립운동가들의 적개심 1순위였을 이 건물이 지금은 근대역사를 ‘배우는’ 장소가 되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말이 절묘히 들어맞다. 한편 임시수도기념관 역시 부산 원도심 투어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6·25 전쟁 당시 서울이 함락되면서 부산이 임시수도 기능을 했는데, 이곳 역시 과거 80년대까지 경상남도지사의 관사로 쓰이다가 지금은 기념관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집무실 등이 재연돼 있으며, 대통령 부부와 비서 등 측근의 생활에 관해 개략적으로 알 수 있게 조성돼 있다.

 

부산에서 그들을 기억하다

부산은 이제 국내의 대표적 휴양지가 되다시피 했다. 이는 KTX 등 교통수단의 혁명적 발전과 주5일제 도입 등에 힘입은 바가 크다. 가수들도 더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라며 목 놓아 우는 대신, ‘부산바캉스(스컬&하하)’로 대중들에게 호소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기억해야 할 역사가 많은 곳이다. 국토의 남쪽에 위치한 까닭으로 침략과 수탈, 그리고 피란의 무대가 된 곳. 자의 반 타의 반, 한국 ‘제2의 수도’로서 역사의 광풍을 온몸으로 막고 버티어 낸 곳이 바로 부산이다.
 
이런 점에서, 부산에 가면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야 함이 옳을 듯싶다. 지금 당신이 즐기는 이 여유가, 부산에서 느끼는 한겨울의 ‘미풍’이, 앞서 이곳을 지키려 애쓴 수많은 이들의 노력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그들도 우리도, 아무도 자신이 살고 싶은 시대를 선택해 태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선택받은 시대의 아픔을, 오늘날의 우리는 기억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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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가면 즐거울 줄만 알았던 부산에, 사실은 이토록 아픈 역사가 많이 남아있었다는 걸 트래블피플도 알고 있었나요? 어제를 알아야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듯, 부산의 옛날을 배우고 기억하는 트래블피플이 되어보아요.

트래블투데이 서덕아 취재기자

발행2016년 12월 24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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