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바람이 아님에도 촛대의 불이 하늘거리며 흔들렸다. 촛불이 흔들리는지 장군의 두 눈동자의 여린 초점이 흔들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많이 적과의 전투가 있었고 곧게 뻗은 대나무처럼 한결같이 묵묵하게 전투를 치러왔던 그였다. 신라군과의 유난히 힘든 전투를 보낸 후라 그런지 그날따라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감도는 듯 했다. 문밖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무심하게 불던 바람에 더욱 평강이 보고 싶던 온달장군은 말없이 붓을 들었다.
온달장군은 늘 평강공주에게 표현이 서툴렀다. 하지만 누구보다 평강을 생각하는 그였다.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그를 보고 바보온달이라고 불렀다.
온달은 서툰 솜씨로 편지를 써내려갔다. 막상 붓을 들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려 하니 평강이 처음 집으로 와 살림을 꾸리겠다고 당차게 말하던 일이 떠올랐다. 단정하게 빗어 내린 머리칼과 곱디고운 얼굴을 하고 내게 시집을 오겠다고 하던 공주.
보고 싶은 평강공주 보시오.
오늘은 유난히 긴 하루였소. 아마도 당신이 그리워 그렇겠지.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니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라 웃음이 나는구려. 당신은 한없이 고운얼굴과 단정한 차림을 하고선 나에게 시집을 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말했었지. 그때 당신에게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당신이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보라고 불렀지만 당신만은 늘 나를 최고라 불러주었던 날들이 생각나오. 내가 당신만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능숙했더라면 당신이 조금은 덜 외로웠을 텐데, 한 마디 서운함 없이 옆에 있어주어 고맙소.
당신과 함께 장에서 말을 고르며 무술과 학문을 배우던 시간들이 떠오르는 밤이오. 말을 타는 것도, 검술을 익히는 것도 더딘 내게 당신은 그저 최고의 장군이라고 나를 치켜세워주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오.
당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이 고구려도 지켜내기 힘들었을 것이오.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공주.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밖이 고요하오.
늘 거침없고 두려움 없이 섰던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지나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일렁이는구려.
아마도 당신이 그리워서이겠지. 이곳 단양에서의 전투가 끝나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오.
그 때까지 건강히 지내시오.
온달은 떨리는 붓을 조용히 거두었다. 막상 편지를 쓰니 평강이 더욱 그리운 밤이었다. 오늘은 쉽게 잠자리에 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긴긴밤이리라.
어김없이 날은 밝고 일찍부터 전투준비에 성 안팎은 분주했다. 병사들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물과 식량도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온달은 얼른 전투를 끝내고 승전보를 울리며 평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견고하게 쌓여진 성벽사이로 여느 때와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화살과 돌이 쏟아져 내렸고 날이 선 칼은 순식간의 병사들을 위협했다. 밤에 한숨도 못잔 탓일까, 사력을 다해 싸워온 그였다. 그 때 온달을 향해 날아온 화살. 온달은 정신이 희미해졌다. 온달은 힘없이 쓰러졌다. 맹렬한 그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꼭 승리해서 돌아가겠다는 평강과의 약조가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급히 온달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전갈이 보내졌고 평강은 놀란 마음에 눈물로 통곡하며 산성으로 도착하였다. 하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맹렬한 기세. 평강은 하염없이 울었다. 편히 보내주기 위해 화살을 제거하면서 온달의 가슴팍에서 어제 그가 써내려간 편지를 발견한다. 평강은 또 한 번 크게 울었다.
이제는 온달을 편히 보내줄 차례다. 그런데 장사를 지내기 위해 관을 움직이려 하자 관이 꿈적도 하지 않았다. 힘이 센 장정들이 들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평강은 관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마음을 전했다.
"장군. 삶과 죽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이제 편히 가소서." 하며 편지를 가슴이 품었다.
그러자 꿈적도 않던 관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평강만을 바라보던 바보장군과 온달만을 바라보던 평강공주. 이 둘의 사랑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