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느새 많이도 늙었다. 세월을 고스란히 견뎌온 자랑스러운 훈장들이 얼굴과 목 그리고 손 마디마디에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쌔액쌔액 숨소리를 내쉬며 늙어버린 주름처럼 꼬깃꼬깃한 옷가지를 가지런히 개고 있는 아내가 있다. 러닝셔츠와 사각팬티는 왜 함께 늙어버린걸까. 매번 아내가, 자식들이 새로 사다주는데 빨래를 개고 있는 아내를 바라볼 때면 빨랫감들이 항상 저렇게 볼품없이 축 늘어져있다.
“늙었네. 젊다고 으스대고 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늙은 거 이제 알았어요? 아이고, 난 진즉에 알았는데. 영감도 참. 꿈도 야무지셔.”
“당신은 여전히 고와. 여전히 예쁘다고.”
“아이고, 영감이 오늘 왜이래? 무슨 바람이 들어서? 호호”
말은 저렇게 해도 빙그레 웃는다. 아내는 웃는 모습이 예쁘다. 눈이 반달모양으로 지어지며 눈가에 주름이 지어진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내는 여전히 반달모양의 눈으로 나를 보며 웃는다.
내일 모레가 아내 생일이다. 아들이란 놈은 근사한 곳에서 밥을 먹이고 밥값을 계산하는 걸로 생일 선물을 대신할 테고 딸내미는 양 팔에 손주새끼들 품고 와 아들내미가 내는 밥을 내는 얻어먹고는 흰 돈 봉투를 건네며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이행할 것이다.
아내가 좋아하던 것이 무엇이 있었나 생각하니 번뜩하고 떠오르는 것이 없다. 무엇이 좋을까? 가지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보려다 만다. 물어보아도 분명 돈으로 주라고 늙어빠진 소리를 할 것이다. 힌트를 좀 얻고자 딸내미에게 전화를 건다.
“나다. 내일 모레 네 엄마 생일인거 알지?”
“어, 아부지. 빨리 이야기 해. 지금 민성이 학원 데려다 주러 가야해.”
“네 엄마 생일 선물 말인데. 뭐가 좋겠냐?”
“선물? 무슨 선물? 엄마 선물? 다 늙어서 무슨 선물이래? 우리 아부지 로맨티스트였네?”
이것이 늙은이들은 뭐 감정도 없는 줄 아나보다.
“됐고. 여자들이 뭐 가지고 싶은지나 말해봐.”
“음. 아무래도 화장품이나 보석 아니겠어? 늙어도 여자는 여자라고 하는 거 몰라?”
“알았어. 끊어. 내일 모레 늦지 않게 와.”
늙어도 여자는 여자라고? 하기야 아내는 늘 얼굴에 여러 가지 화장품을 발랐다. 스킨, 로션까지는 알아들어도 당최 그 다음부터는 말해줘도 모르겠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화장품이 좋을까.
시내로 나오니 젊은이들의 혈기가 왕성하다. 번쩍이는 불빛에 소란스런 스피커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들이 귀를 왕왕거리게 했다. 둘러보니 이곳저곳 죄다 젊은이들이 좋아할만한 것들뿐이다. 한 참을 화장품 가게 앞에 서성이니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던 여자가 할머님 드릴 선물 고르냐며 내 팔을 끌어당겨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천천히 골라보라며 상큼한 미소를 남긴 여자는 다시 밖으로 나가더니 마이크에 대고 사람들을 불러보았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이것저것 화장품들이 많았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많은지.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사장처럼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걸었다.
“사모님드릴 선물 고르시나봐요?”
“예. 허허 그런데 이거 뭐 봐도 모르겠네요.”
“이쪽으로 오시면 주름개선 그리고 피부미백에 좋은 제품들 많거든요? 한번 보세요. 이 제품은 저희 가게에서 가장 잘 파리는 제품인데요, 한 번 써보신 분들은 다시 쓰는 경우가 많아요.”
“음. 그래요? 잘 모르겠네요.”
“아, 그러시면. 이 제품 어떠세요? 머드로 만든 제품인데요. 이것도 인기가 좋아요. 부드러운 느낌이 강하고 촉촉해서 어머님들도 굉장히 좋아하시고요.”
머드라. 언젠가 아내가 얼굴에 희뿌연 것을 바른 기억이 난다. 아내는 팩이라고 했고 부드러운 것이 하고나면 촉촉해 진다고 했다.
아내에게 줄 선물이 손에 들려있다. 선물을 받을 아내를 떠올린다. 분명 뭐 하러 이런데 돈 쓰냐고 하겠지만 반달모양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줄 것이다. 아내에게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