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시인은 그의 시 ‘보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전략) … 보리밭 속에 들어가 / 보리와 함께 흔들리며 / 일생을 살아가는 / 사람은 정확히 알리라 / 세상 옳게 이기는 길 / 그것은 바로 / 바르게 서서 푸르게 생을 사는 / 자세에 있다는 것을’ 청보리는 바르게 서서 푸른 생을 산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보리는 익어도 빳빳하게 고개를 든 채다. 속은 대나무처럼 비었다. 고개를 숙이며 지내는 일만큼이나, 마음을 비우고 꼿꼿이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마음이 쉼 없이 갈팡질팡 댄다면 청보리밭으로 떠나보는 게 어떨까. 세월은 어느 틈엔가 훌쩍 지났고, ‘책임’이란 이름을 단 나이의 무게는 한껏 둔중해졌지만, 보리의 청록은 변치 않고 그대로다. 누군가는 청록의 보리밭을 바라보며 어려운 시절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엄마 손 붙잡고 보리밭 사잇길로 장을 가던 날을 떠올릴 테다. 또 다른 누군가는 동무들과 함께 뛰놀던 기억을 떠올릴는지 모른다. 청보리밭은 ‘추억’ 한 조각으로, 속세라는 거대한 바다에 절은 우리들을 가만가만 보듬어 준다.
 
국내에서 청보리밭으로 가장 이름이 난 곳은 전북 고창이다. 약 30만 평의 대지 위에 청록빛을 한껏 머금은 보리밭이 펼쳐지는 고창은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다음으로는 제주의 가파도를 들 수 있겠다. 가파도는 국내 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이다. 섬의 최고점이 불과 20m에 이를 정도다. 이 낮고 작은 섬에는 보리밭을 따라 걷는 올레길이 조성돼 있다. 17만 평의 보리밭이 가파도의 들판을 가득 메운다.
 
한편, 전북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빌딩과 산이 없다. 드넓게 펼쳐진 평야의 주인은 벼와 보리다. 특히 보리밭 면적이 여의도의 1.6배에 달할 정도로 넓다. 이 밖에도 군산 미성동 일원에서 열리는 꽁당보리축제, 청보리밭과 유채꽃이 함께 피는 울산의 태화강 등 청보리밭을 볼 수 있는 곳은 무궁무진하다. 올봄, 탁 트인 청보리밭에 서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시켜 보자.